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회의원선거는 더욱 그렇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선 친노동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 호민관'을 자처하는 후보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비전, 포부를 들었다.<편집자>
 

▲ 은수미 선거사무소

그는 두 개의 상장(喪章)을 달고 산다. 하나는 왼쪽 어깨 부근에 노란 리본으로 달렸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 새겼다. 뚜렷한 친노동 행보로 노동계의 지지를 받은 은수미(53·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얘기다.

은 의원은 최근 4월 총선 출마자를 가리기 위해 치러진 내부 경선에서 안성욱 전 대검 중수부 검사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더불어민주당 단독 후보로 성남 중원에 출마한다.

은 후보는 2014년 4월 이후 늘 노란리본을 달고 산다.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재선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문제에 유독 관심을 갖는 까닭을 묻자 “노동은 살면서 가슴에 새긴 상장”이라고 했다. 은 후보와의 인터뷰는 18일 오후 성남 중앙동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됐다.

"노동은 가슴에 새긴 상장"

- 노동문제에 천착한 의정활동을 했다. 계기가 있나.


“서울 신림동에서만 20년 넘게 살았는데, 집이 200평이나 됐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해병대 장교 생활을 하셨다. 꽤나 유복했다.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랐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고 친구가 생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친구 중에 고아도 있었다. 집 근처 100미터 지점에 판자촌이 있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런 곳에 살지?’ ‘친구 도시락 반찬은 왜 저렇지?’ 하는 의문을 품었다. 크면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새긴 상장 같은 것이 됐다. 어린 시절 부모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180도 달라졌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으로 구속까지 됐다. 부모님이 충격을 받았다.(웃음)”

은 후보는 1992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6년간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고문을 당했다. 후유증으로 폐렴과 폐결핵을 앓았다. 아직도 몸이 불편하다.

- 최근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주목을 받았는데.

“처음엔 누가 들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법안 통과를 하루라도 더 막기 위해서 했다. 필리버스터에 나서며 사실 선거는 어느 정도 포기했다. 종합편성채널의 먹잇감이 되고 야당의 발목잡기로 여론의 지탄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력에 피해를 당한 나 같은 사람이 다시는 안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시간제한이나 편집 없이 내가 가진 모든 생각을 쏟아 내고 싶었다. 덕분에 지난 4년간 의정활동을 하며 했던 발언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오래 마이크를 잡았던 것 같다.(웃음) 어떻게 10시간 이상 버텼냐고 많이들 묻는데, 절실함으로 그랬다. 나와 같은 고통을 누군가 다시는 겪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예상 밖 반응에 무척 놀랐다. 지금도 주민들을 만나면 필리버스터 얘기를 많이 한다.”

중원구 성장모델은 '개발' 아닌 '재생'

- 성남 중원구를 출마지로 삼은 이유는.


“나와 꼭 맞는 지역이다. 서민들의 도시다. 사회적 약자가 많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런 분들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정치에 뛰어든 목적이다. 인근 분당은 70%가 아파트다. 반대로 중원은 아파트가 30%에 불과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정겨운 골목길이 살아 있는 곳이다. 중원을 아파트 도시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주민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개발이 아닌 재생이다. 골목길을 없애 아파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골목상권을 살려야 한다. 중원을 공동체가 살아 있는 삶터로 만들 것이다.”

- 공약을 소개해 달라.

“성남산업단지가 정부의 노후 산업단지 경쟁력 강화사업에 선정됐다. 올해 설계가 진행되는데, 향후 3천개의 기업을 추가로 입주시켜 지역에 일자리 4만개를 창출할 것이다. 근린시설을 늘리고, 판교테크노밸리·성남하이테크밸리와 연결하는 교통망을 구축해 산업단지 재생의 시너지를 키우겠다. 새로 뭔가를 짓고 하는 전시성 행정은 사양한다. 중원에는 중원에 맞는 성장모델이 있다. 중원 시민들이 가족·친구들과 함께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더 잘 살도록 주거·일자리·환경·교육을 재생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선거 캐치프레이즈가 ‘진짜가 나타났다’다. 나의 강점은 끈질김이다. 진짜 정치로 중원을 재생시키겠다.”

- 지난 의정활동 중 아쉬운 점과 뿌듯했던 순간을 꼽자면.

“매 순간이 아쉬웠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통과된 것이 없다. 특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아쉽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기 중반에 겪은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힘이 주어졌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큰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있다. 세상을 바꾸기 전까지는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노동전문가로서 임기가 끝나면 노동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세월호를 겪으면서 마음속 둥지를 부쉈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재선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 세상이 바뀌어 세월호 리본을 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니다. 최근에도 유성기업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일하는 통신비정규 노동자들이 어떤 모임에 날 초청해 ‘비정규직 수호천사’라고 불렀을 때다.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꿈을 꾸는 듯했다. 내가 일을 좀 했구나 여겼다.(웃음).”

법원은 2013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10만명의 시민이 4만7천원씩을 모금하는 노란봉투 운동이 이어졌다. 은 후보가 노란봉투법을 발의한 배경이다. 그가 속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해 주요 통신대기업에서 간접고용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를 때 사측과 만나 임금·단체협상이 타결되도록 중재했다.

"최우선 과제는 노조 손배 압박 줄이기"

- 20대 국회에서는 어떤 입법활동을 할 것인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할 생각이다. 19대 국회에서 제출한 법안을 다시 발의하고, 또 한 번 도전할 것이다. 실패는 두렵지 않다. 포기가 두렵다. 최우선 과제는 노란봉투법 통과다. 새누리당 반대로 그게 가능하겠냐고 묻는데,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지금은 사용자가 노조 신원보증인에 대해서도 신원보증법에 근거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연좌제나 마찬가지다. 법안에 영국 같이 노조의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금액의 상한을 정하는 내용이 있다. 법안을 통째로 통과시키기 어렵다면 여당과 조항별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젊음 하면 꿈·사랑·도전·희망 이런 단어가 떠올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 20~30대 청년들은 정규직·일자리·취업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정치와 제도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서로를 밟거나 밟힌 경험만을 갖고 살고 있어 안타깝다. 20대 청년이 일을 그만두고 훌쩍 배낭여행을 떠나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여야 한다. 정치가 그 불안감을 없애 줘야 한다.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야만 행복해지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영화 한 편이나 포근한 산책에 행복해지는, 시민으로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를 하고 싶다.”
 

은수미 후보는

- 1963년 12월 서울 출생
-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 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 현 더불어민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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