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봄기운이 짙어지는 지난 16일 저녁 서울 중구 경향신문 9층 식당은 대학생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거리의 시인' 송경동의 세 번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응원마당에 참석한 이들이다. 시민들은 하나같이 문학청년이 돼 거리에서 쓰인 송경동 시인의 시를 찬찬히 훑어봤다. 백기완 선생도, 장기투쟁을 벌였던 김득중 쌍용차지부장도, 유흥희 기륭전자분회장도 이날만큼은 둘도 없는 문학청년이었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와 송경동의 벗들이 주최한 응원마당에는 200여명의 사람들로 들어찼다.

송경동 시인의 시집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응원마당 참석 노동자들은 “투쟁현장에서 시인이 낭독한 시가 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해 큰 위안을 받았다”며 "시인의 시에 빚진 시삯을 내는 자리"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수차례 희망버스를 조직했고 집회에 나갔다가 연행되기를 밥 먹듯 했다. 2010년 10월 기륭전자분회 복직투쟁 현장에서는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시인과 노동자들은 이날 밤 늦게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문단에서 드문 노동시집의 발간을 축하했다.

“7년 동안 쓴 시에는 기륭이, 쌍차가, 세월호가”

시집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허공클럽’이라는 제목의 시는 고공농성자들을 “지상에선 존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시의 주인공이 된 이들에게 일일이 서명이 담긴 메시지를 적어 건냈다.

송 시인은 “용산참사 현장과 쌍용차 투쟁현장, 그리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싸움을 함께하며 시를 썼다”며 “두 번째 시집을 냈던 2009년보다 노동자와 민중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는데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을 느끼면서 시를 썼다”고 속내를 내보였다. 그는 “동지들의 삶만큼 아름다운 시를 아직도 못 쓰고 있지만 노동자와 민중을 위해 길거리를 떠나지 않고 배우면서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박신규 <창비> 편집자는 “200권이 넘는 시집을 만들었지만 송경동 시인의 시집을 편집할 때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며 “시인이 말하는 노동자들이 살만한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기투쟁하며 응어리진 마음 시가 어루만졌다”

김득중 지부장은 “장기투쟁을 하면서 응어리진 마음을 표출할 수 없어 힘들었다”며 “송 시인의 시를 들으며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는데 집회 때마다 항상 연대해 줘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유흥희 분회장은 “송경동 시인이 시집을 낸 걸 보니 오랜만에 투쟁 대신 본업을 한 것 같아 기쁘다”며 “시집에는 거리에서 오체투지를 할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절한 현실이 담겨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고동민씨는 “시집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해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자”고 제안해 참석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한편 이날 응원마당은 춤과 노래 그리고 연극무대가 펼쳐졌다. 표제시인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는 연극으로 재구성돼 공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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