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제작비가 부족하면 막내작가 월급부터 차감한다. 버거운 일을 시키면서 마음에 안 들면 나쁜 소문을 내서 업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선배가 수두룩하다."(2년차 방송작가 A씨)

"방송사의 변덕스러운 제작비 산정이나 취소로 갑자기 프로그램이 끝나거나 불방되면 수입이 없어진다. PD 말을 잘 안 들으면 당일 해고되기도 한다. 문제가 셀 수 없이 많다."(15년차 방송작가 B씨)

방송프로그램 제작·진행에 필요한 원고를 작성하는 방송작가들이 열정페이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원고작성 외에도 기획·출연자 섭외·자료조사 같은 제작과정 전반의 업무를 도맡고 있다. 그럼에도 프리랜서 신분인 탓에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4대 보험에서 배제돼 있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는 16일 오후 서울 중구 노조회의실에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11일부터 21일까지 방송작가 647명을 조사한 결과다. 20~30대가 99.3%을 차지했는데, 여성이 94.6%였다. 이들은 대부분 프리랜서(65.4%) 혹은 외주제작사(21.9%) 소속이다. 대체로 소속과 상관 없이 정식 근로계약이 아니라 프로그램 단위로 고용돼 프로그램 제작비에서 임금을 받는 바우처 식 고용계약을 맺는 것으로 파악됐다.

방송작가들은 주당 평균 53.8시간 일했고, 월평균 170만6천70원을 받았다. 최근 1년간 월평균 수입은 129만원에 그쳤다. 프로그램이 종방·결방되면 임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력이 짧은 막내작가는 주당 평균 55.7시간 일하고도 월평균 임금은 120만6천원에 불과했다. 시급 3천88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6천30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방송작가들의 임금·고용은 방송사 이해관계에 좌우됐다. 응답자의 53.4%가 고용해지를 경험했는데 가장 큰 사유는 프로그램 개편·제작비 축소, 시청률 하락(46.3%)이었다. 그 다음은 담당PD와의 불화·담당PD의 메인작가 교체(13.9%)였다. 응답자의 46%는 방송사·외주제작사의 경영상 이유나 제작비 부족(45.9%)으로 임금체불을 당했다. 프로그램 제작이 중단·불방·결방될 경우 급여를 아예 못 받거나 받지 못한 적이 많다는 응답이 각각 34%와 38.9%를 차지했다.

95.9%가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했고, 식비를 온전하게 받지 못한 경우도 56.9%나 됐다. 방송사 PD 혹은 함께 일하는 방송작가의 인격무시 발언(82.8%)이나 욕설(58.4%)·성폭력(41.1%) 같은 인권침해도 비일비재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최근 근로자성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완화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도 근로자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 "노조 조직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처럼 산업 특성을 감안한 관련 법·제도 개선, 산재보험 전면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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