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노동자 경영참가 논의는 역사가 길다.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45년 이후 3년간 미군정을 거친 이후 48년 유엔 결정하에 남한에서만 총선이 진행됐다. 당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은 총파업을 벌이며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영구 분단을 가져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군정과 우익이 주도해 만들어진 대한노총은 총선거를 적극 지지했고, 직접 국회의원 후보로도 출마했다.
48년 5월10일 총선거에서 노총위원장이었던 전진한이 상주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대한노총의 전진한 위원장은 새로 제정될 헌법 조문에 한국의 노동대중을 위한 균등사회 실현을 위해 노동자들의 이익균점권을 보장하는 제안을 대한노총 이름으로 다른 국회의원 9명과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그의 제안 중 대한노총은 헌법에 편입해야 할 8가지 조항을 '노동 8개항' 혹은 '노동헌장'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 3권 보장 △이익균점권 보장 △광물 및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등 모든 자연력 국유화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 △자본과 무역 국가 통제와 함께 "법률로써 내각에 자문하는 국민경제회의를 두되 그 구성의 반수를 노동자 대표로 할 것" 등이다.
특히 이익균점과 관련해 “노동과 기술은 자본으로 간주한다. 관·공·사영 일체 기업에 속한 노동자는 임금 이외에 당해 기업체의 이윤 중에서 최저 30% 이상 50% 이내의 이익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 각개 기업체에 대한 구체적 이익배당률은 국민경제회의 결의를 거쳐 법률로써 정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노동자 경영참가를 보장하기 위해 “관·공·사영 일체 기업체에 속한 노동자는 당해 기업체의 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각 기업체 내에 노자협의회를 구성해 운영에 관한 중요 사항을 협의하며 노자협의회의 판정 없이는 노동자의 해고와 정직, 기타 처분을 하지 못한다. 노자협의회에 관한 사항은 국민경제회의 결의를 거쳐 법률로써 정한다”고 밝히면서 경영 과정에서의 참가권을 요구했다.
이후 열린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토지분배 문제와 기업체 이윤분배 문제를 비롯한 경제 조항에 관한 기초를 둘러싸고 격돌했고, 결국 친일파들이 중심이 된 한민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대한노총은 전국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적인 투쟁을 전개하면서 사기업에 대한 이익균점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익균점권은 48년 7월5일 제25차 본회의에서 8시간 격론 끝에 수정안으로 가결됐는데, 노동자 경영참가 안은 완전히 삭제된 대신 이익균점권만 단서로 삽입됐다.
제헌국회를 통과해 48년 7월17일 공포된 헌법에는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정리됐다.
노동자 경영참가나 이익균점권에 관한 헌법 조문화 투쟁은 외견상으로는 대한노총의 전진한이 제안한 것이지만 지금 헌법과 비교해 보면 대단히 파격적일뿐만 아니라 급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적 의식, 즉 일제와 미군정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족해방투쟁, 반자본 투쟁, 친일파 공장을 노동자들이 자주관리한 경험 등을 통해 강화된 기층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단체협약 및 근로조건 개선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기업 경영에 관한 노조 참가가 확대됐다. 그러나 경영참가는 작업장 수준의 일상활동을 넘어서지 못했고, 노동자 고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핵심 사항까지 노조의 참여가 확대되지 못했다. 생산과 관련해서도 노동자들의 참여는 충분하게 허용되지 않았다.
90년 이후 경영참가에 대한 요구는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노조에서 강하게 촉발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요구의 내용과 수준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 비슷하게 수렴됐다.
21세기 들어 노동자 경영참가는 인사경영권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자본과 국가의 공세에 밀려 위축되는 추세다. 공공부문을 필두로 노동조합이 그동안 투쟁으로 쟁취한 경영참가 관련 단체협약이 무력화되고 있다. 그동안 법·제도적 보장 없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으로 확보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는 과거로 후퇴할 위기에 놓여 있다. 48년 제헌헌법 제정 과정에서 불거진 이익균점권·경영참가권 논쟁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