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과 국제금융기구들이 은행권 성과급 규제로 정책을 전환하는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만 뒤늦게 성과주의 확산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위기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일 금융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임수강 연구위원은 최근 발행한 '2007~2008년 위기 이후 글로벌 수준의 은행권 성과급 규제 흐름' 보고서에서 "미국 등 주요 나라 은행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성과급제를 확대하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성과급제 리스크를 줄이는 가이드라인과 규제방안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 은행들은 성과급제를 확대해 자산을 최대한 부풀리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들이 가계대출 판매에 적극 나선 결과 2000년 7조달러였던 가계대출 규모가 2007년 14조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저신용자(서브프라임 등급)까지 대출을 대폭 늘리면서 은행 자산의 질이 크게 낮아졌고,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한 연구도 있다. 2012년 수밋 아가왈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연구원과 이자크 벤 데이비드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가 발표한 '대출 담당자의 인센티브가 느슨한 대출기준으로 이어지나' 연구논문에서 미국 대형 상업은행 대출담당자들의 보수체계를 고정급에서 성과급으로 바꾼 뒤 대출행태 변화를 살펴봤더니 성과급 수령자의 대출 승인율이 고정급 수령자보다 무려 31%포인트나 높았다. 건당 대출금액은 15%포인트, 부도율은 28%포인트 높았다. 성과급제가 대출 부도율을 높이면서 은행 자산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를 지켜본 세계 금융감독기구들도 성과급제를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고 보상체계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은행감독위원회(CEBS)는 2009년 개인·집단 성과 조합에 바탕을 둔 보상과 기본급·성과급의 적절한 비례를 주문하는 보상체계 원칙을 발표했다.

임수강 연구위원은 "성과급제에 대한 규제를 만드는 글로벌 추세와 달리 최근 우리나라 정책당국은 뜬금없이 은행권 성과급제 강화를 들고나왔고,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따라 개별 은행들도 성과급제 확산을 서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과급제 도입으로 자산확대 경쟁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부실자산이 쌓이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위기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