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지난 19일 "기업노조로 전환한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 달라"며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발레오전장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정기훈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만 가면 번번이 깨지네….”

지난 19일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발레오만도지회 금속노조 탈퇴사건’ 판결이 노동계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통상임금의 고정성’ 개념을 새로 정립한 판결을 내놓으며 노동계를 혼란에 빠뜨린 바 있다. 이번 판결로 노동계는 연타를 맞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다.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종전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전원합의체가 열린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산별노조 싫으면 떠나라”=발레오만도지회 금속노조 탈퇴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산별노조를 통한 집단적 단결권’과 ‘근로자 노조선택의 자유(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따졌다.

그동안 나온 하급심 판결은 산별노조를 통한 노동자 보호에 무게 중심을 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 단결권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별노조 체계가 기업노조 체계에 비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산별노조 체계가 노조간부와 사용자의 유착을 방지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제고할 수 있고, 단체교섭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데 적합하며, 기업 간 또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등 근로조건 균등화를 달성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번 판결을 통해 하급심 판단을 뒤집었다. ‘근로자 노조선택의 자유(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산별노조가 싫으면 떠나도 된다고 인정해 준 셈이다. 지금까지는 산별노조 조합원 개별탈퇴는 가능해도 지부·지회 단위 집단탈퇴는 인정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룰이 깨져 버린 것이다.

이는 지난해 5월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사용자측이 가장 주요하게 주장했던 내용이다. 사용자측은 “근로자 단결선택의 자유와 산별노조 조직보호 가치가 충돌할 때 전자를 우선시하는 것이 노동 3권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다”며 “노조 조직형태변경 제도 도입취지는 근로자 단결권을 보호하려는 것이지, 특정 산별노조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민법 개념 동원한 ‘사용자 편들기’=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용자들의 이 같은 논리를 적극 수용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산별노조의 지부·지회라도 그 외형과 달리 독자적인 노동조합 또는 노동조합 유사의 독립한 근로자단체로서 법인 아닌 사단에 해당하는 경우 자주적·민주적 총회 결의를 통해 그 소속을 변경하고 독립한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며 “이렇게 해석할 때 근로자들의 결사의 자유와 노동조합 설립 자유를 보장한 헌법과 노조법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법인 아닌 사단’이라는 민법적 개념까지 동원해 산별노조 하부조직인 지부·지회의 독립성을 무리하게 인정해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법원이 어려운 법률적 용어를 차용했지만, 이번 판결로 산별노조가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는 사용자들의 숙원사항이었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의 독점적 지위가 유지돼선 안 된다”는 사용자들의 일관된 주장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꼴이다.

이번 판결이 노조 조직형태변경을 둘러싼 노동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은 분명하다. 반대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들이 “사용자가 대립관계에 있는 산별노조를 축출하고 우호적인 기업노조 설립을 유도하고자 조직형태변경을 통해 기업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은밀하게 지원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부당노동행위 증가 가능성을 우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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