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전세버스업계에 만연한 불법 행위를 모른 체했다. 전세버스는 1993년 허가제(면허제)에서 등록제로 규제가 완화된 뒤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규제완화 뒤 지입버스 급증, 대부분 생계형 노동자

'2014 국토교통부 국가교통통계'에 따르면 93년 전세버스는 305개 사업체에서 7천481대가 운행됐다. 그러던 것이 2013년에는 1천661개 사업체에 4만1천727대로 급증했다.

사업체 설립 규제가 완화되면서 전세버스업계에 영세사업자 비중이 높아졌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전세버스 사업자 중 버스를 20대 미만 보유하고 있는 영세규모 사업체가 40%를 차지한다.

국토교통부는 전세버스 사업체의 75%가 지입차를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직영버스와 직영기사만 사용하는 업체가 25%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전체 전세버스 가운데 지입차 비중도 8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영세사업자들은 직영차량을 운행하는 것보다 지입차량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방식을 선호한다. 지입기사들도 비교적 저렴한 초기투자비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전세버스가 확산된 배경이다. 업계는 규제완화 이후 늘어난 전세버스 대부분을 지입차량으로 보고 있다.

지입은 자신의 버스를 소유한 기사들이 운수회사에서 일하고 수수료(지입료)를 납부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지입 형태의 영업행위가 관행처럼 퍼진 것이다.

교통연구원은 2013년 작성한 '전세버스 운송사업 규제합리화 방안 연구'에서 실업자 증가가 전세버스 차량 증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입 전세버스 기사들이 대부분 생계형 노동자들이라는 뜻이다.

지입기사 재산권·안전 '미흡'

지입버스는 노동자들이 구입했지만 법적 명의는 운수회사로 돼 있다. 이로 인해 갖가지 사회 문제가 야기된다. 회사가 지입버스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먹튀를 하거나, 회사 말을 듣지 않는 지입기사의 버스를 임의로 매각해 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지입버스와 직영버스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양측 기사의 갈등을 조장해 노조활동을 방해하거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사례도 잇따른다. 게다가 버스기사와 운수회사 모두 차량 안전·점검에 소홀한 탓에 사고도 빈발한다.

정부는 수요·공급 조절대책으로 전세버스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국토부는 2014년 12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2년간 전세버스 신규등록과 증차를 제한하는 '전세버스 총량제'를 시행 중이다. 이와 함께 정부와 업계가 참여하는 전세버스 수급조절위원회를 열어 지입기사들의 협동조합 설립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결정했다. 전세버스 공급을 줄이되 음성적인 지입차량을 협동조합으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집중단속으로 지입차를 적발해 등록취소·형사처벌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세버스도 대중교통으로 인식해야"

이런 가운데 단속과 수요공급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지입·안전·노동조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정부는 과거 여러 번 지입차량에 대한 단속 강화 방침을 세웠지만 운 없이 적발된 일부 지입기사들만 생계형 차량을 잃었을 뿐"이라며 "협동조합을 구성하라는 것도 지입기사들끼리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인데, 그걸 제대로 된 정부 대책으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등록제를 부활시켜 지입기사들에게 개인택시 같은 개별사업권을 부여하자는 제안도 한다. 이와 관련해 등록제가 개인재산권을 보호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운수사업체 영세화를 초래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노동계는 "전세버스를 대중교통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스 운영부터 차량 점검까지 정부가 개입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입기사 수수료로 운영되는 소규모 업체를 정리하고 대형화한 다음 시내버스 준공영제 같이 정부·지자체 감독하에 묶어 두고, (가칭)전세버스관리공단을 설립해 버스 안전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전세버스를 민간영역에 그대로 방치해 두고서는 지입 문제와 미흡한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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