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를 받아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다.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고 취업한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시간강사로 취업한 박사들이 많다는 얘기다. 인문계열의 경우 임시직 비율이 무려 36.6%다. 연봉 2천만원도 못 받는 인문계열 박사는 42.1%에 달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졸업한 박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대학 밖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과 달리 대학 안에서 인문학 박사는 찬밥 신세인 셈이다. 게다가 박사들은 밥줄마저 위태롭다. 최근 대학은 해고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타깃은 시간강사들이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교양과목을 강의한 시간강사 42명은 지난 1월 이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강의하던 과목이 폐지됐다는 내용이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지난해 말 113명의 시간강사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지방대학 시간강사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강사들의 계약기간은 6개월에서 1년에 불과하다. 대학들은 교원 경쟁력 향상을 위해 재임용제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시간강사 대다수는 강단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학들은 시간강사 해고를 위해 재임용제를 악용했다. 또 시간강사는 교원이면 당연하게 갖게 되는 신분·재산상의 권리조차 없다. 계약기간이 6개월 내외이기 때문에 사전 공지 없이 강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폐단을 개선하고자 마련된 것이 고등교육법(일명 시간강사법) 개정안이었다. 시간강사 무더기 해고를 막고, 처우를 개선하자는 게 법 개정 취지였다. 주당 강의시수가 9시간 이상인 시간강사는 전임교원으로 인정하고, 1년 이상 임용한다는 내용이다. 시간강사에게 4대 사회보험 가입과 퇴직금 지급을 보장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우여곡절 끝에 시간강사법은 2011년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국회는 두 차례 시행을 유예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31일 또다시 2년을 연기했다. 당초 2013년 1월에 시행됐어야 할 법을 2018년 1월로 5년 미룬 셈이다.

대학들이 재정을 이유로 이 법 시행에 반발한 탓이다.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해고하고, 전임교수에 강의를 몰아주는 수법으로 이 법 시행에 맞섰다. 시간강사 대신 초빙교수 등 비정규직 교수가 채워졌다. 시간강사 무더기 해고가 이어지니 시간강사법 시행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학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간강사 해고는 지금도 여전하다.

대학들의 이런 행태는 정부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교육부는 지난 2014년 전임교원 확보율 등 구조개혁평가지표를 발표했다. 대학들은 전담교원 확보율을 높인다는 핑계로 시간강사를 해고한 대신 2년 계약직의 강의전담교수를 그 자리에 채웠다. 인건비를 아끼려 비정규직 교수 1명을 채용한 대신 시간강사 2명이 해고됐다. 정부는 대학에게 전담교원 확보율 향상을 요구했다고 하지만 애꿎은 시간강사들만 피해를 봤다. 정부는 사실상 시간강사 해고를 유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만 대학만 일거양득이었다. 시간강사 해고는 시간강사법을 회피하고, 정부 정책에 생색을 내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이러니 시간강사로 채용된 신임 박사들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강단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고등교육기관이 이렇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대학은 근로감독의 성역이 아니다. 2007년 대법원은 “시간강사도 엄연히 근로자”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정부는 시간강사 해고를 강행한 대학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검토해야 한다. 시간강사 무더기 해고사태는 막아야 하지 않는가.

국회는 시간강사법 시행을 유예하면서 올해 8월까지 정부에 대체법안 마련을 주문했다. 시간강사법을 두고 대학·강사단체·전국교수노조·비정규직교수노조의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이해단체들의 입장을 충분히 수렴해 법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는 총선거를 앞둔 국회를 빌미로 대체법안 마련에 손을 놓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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