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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성장론의 한계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일 경제정책기조를 발표했다. 미국 민주당의 '포용적 성장' 정책을 벤치마킹해 '더불어성장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공정경제·선도경제·네트워크경제를 범주로 해서 청년일자리, 비정규직 차별 철폐, 이익공유제, 최저임금 인상, 혁신중소기업 육성, 남북경협 확대, 지역특화클러스터 지원,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했다.

한눈에 봐도 익숙한 것들이다. 꽤 오랫동안 여러 정당이 경제정책으로 내세웠고, 일부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솔직히 '더불어성장론'이란 이름 빼고는 왜 굳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새로 발표하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새롭지 않다는 것보다 틀린 정책이란 점이다. 먼저 더불어성장론은 경제위기·민생위기의 핵심을 비껴 나갔다. 현재 한국 경제위기는 일부만 성장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 성장하던 수출대기업마저 활로를 찾지 못해 발생했고, 이 수출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비용을 노동자에게, 국민경제에 떠넘기며 심각해지고 있다. 현 정세에서 경제정책의 첫 번째는 수출대기업들이 손실을 떠넘기는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이다.

더불어성장론을 살펴보자. 현장에선 인력 구조조정 전쟁 중인데,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청년일자리 70만개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고, 재벌 전체적으로 순손실이 커지고 일감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원·하청 이윤공유제를 하겠다고 말하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매출 급감과 부채로 당장 파산 직전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실 가능성도 없는 건 둘째치고라도, 현실에서 실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 무대책이다. 더군다나 더민주당은 “더불어 성장하자”는 정책을 내며 정작 대기업발 인력 구조조정 폭풍을 가져올 정부 원샷법에 찬성했다. 일관성마저 없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뜬금없는 새로운 성장모델이 아니다. 당장 손에 칼을 들고 노동자의 목을 내치고 있는 대기업들에 대한 과감한 규제와 재벌대기업의 손실전가를 막아 낼 제도들이다. 그래야 그다음에 중소기업도 청년고용도 이야기할 수 있다. 더불어성장론은 현실성도 진정성도 없다.

다음으로 더불어성장론은 미국 민주당에서 이야기되는 포용적 성장을 제대로 베끼지도 못했다. 미국 민주당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에서 케인스주의 대표 경제학자인 로렌스 서머스가 집필한 포용적번영위원회 보고서는 "수요 중심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임금인상과 완전고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이를 위해 노조와 단체협약 확대를 첫 번째 정책수단으로 꼽는다. 이미 실증적으로도 확인된 것처럼 노조할 권리가 많을수록 소득수준과 소득불평등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통화와 재정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경제정책이 사실상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재정을 통한 일자리나 통화공급을 통한 경기활성화보다 노동자 스스로가 제 권리를 집단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 늘고 있다.

하지만 더민주당 경제정책에는 노조법 개정이나 노조 조직률 향상 같은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오히려 포용적 성장정책이 비판하는 전통적 재정정책만 있는데, 정부가 재정을 쏟아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을 지원하겠단 이야기뿐이다. 미국과 비슷하게 한국 역시 장기 불황 속에서 전통적 경제정책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 건 이미 박근혜 정권에서도 확인한 바다. 시중에 돈이 돌아도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정부가 재정을 늘려도 경제활성화로 세입이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실 몇 가지 각론을 제외하면 더민주당의 정책도 박근혜가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민주당은 유능한 경제정당을 표방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민생위기 속에서도 그다지 유능한 대안세력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당은 여전히 20%대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40%가 넘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지지율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더민주당이 내세우는 경제정책이나 여권에 대한 비판이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의미다.

민주노조나 진보정당들은 야권연대란 이름으로 더민주당에 목을 매기 이전에 현 정세에서 진짜 필요한 요구와 정책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 노동자운동에 더민주당은 독이 든 먹음직스런 사과도 아니고 이미 보기에도 먹지 못할 썩은 사과일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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