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대졸초임 삭감을 추진한다. 60세 정년 의무화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재계가 고령자는 물론이고 청년들의 임금도 손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박병원)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2016년 경영계 임금조정 권고’를 발표했다.

청년고용 핑계로 청년임금 삭감하나

경총은 “올해 임금을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임금인상 여력이 있는 기업은 그 재원으로 신규채용을 확대하고 취약계층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이와 함께 경총은 대졸 정규직 신입직원 초임이 3천600만원 이상(고정급 기준)인 기업에 대해서는 “과도한 초임을 조정해 그 재원만큼 신규채용을 확대하라”고 주문했다.

경총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300인 이상 기업의 대졸 정규직 평균초임(고정급)은 3천646만원이다. 대졸초임을 이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노사정은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서 "노사정은 근로소득 상위 10% 이상은 자율적으로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임금·근로시간 피크제 확산과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청년·비정규직 고용에 사용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세대 간 상생고용이 필요하다”며 재계 관계자들에게 이 같은 방안을 권고해 왔다.

그럼에도 재계가 고용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계획도 없이 고령자·고소득자 임금삭감 혹은 임금인상 자제에 이어 신입직원 임금까지 삭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제난 타개를 위해 당시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공공기관 대졸초임 삭감이 민간기업인 시중은행까지 확산된 2009년 사례를 연상케 한다.

박병원 회장은 "사용자의 임금지출 총액은 한 푼도 변화가 없다고 전제하고 주어진 일자리와 임금을 근로자들 사이에 어떻게 나눠 가지는 것이 더 정당하고 공정한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 개혁, 노조 동의 안 받아도 된다?

경총은 임금조정 권고를 통해 연공 중심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하되, 전면적인 전환이 어려울 경우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임금체계를 바꾸라고 제안했다.

경총은 특히 “새로운 임금체계를 신입 근로자나 개별 근로자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사합의나 협상이 필요한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 과정을 생략하고 개별적으로 새로운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박 회장이 이날 총회에서 “노동시장 개혁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조의 합의나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노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90%의 근로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개혁을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뤄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경총 관계자는 “신입직원이 입사할 때 별도 임금체계를 적용하도록 근로계약을 맺거나, 개인적으로 원하는 근로자와 근로계약서를 수정하는 방법이 있다”며 “집단적인 변경이 어렵다면 작은 부분부터 바꿔 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노동계는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임금체계 개편시 노조와의 사전 합의 조항 단체협약 명시 △개인별 임금차등을 제한하는 조항 단체협약 명시를 담은 임금·단체협상 지침을 산하조직에 내려보낼 예정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지침을 통해 선제적인 조치를 내리니까 재계가 여기에 편승해 개악안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사용자가 근로조건 개악을 시도하면 총연맹에 보고하도록 하고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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