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기자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이 ‘쉬운 해고’를 조장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이 ‘저성과자 골라내기’용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공고하면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무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법규와 상충하는 정부 지침이 노동시장을 교란시키는 형국이다.

금속노조와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서 벌어진 저성과자 색출 움직임을 규탄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무시=삼성동대문서비스(동대문센터)는 지난달 1일 ‘징계 기준 보완’이라는 제목의 지침을 내려보냈다. 노동부가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초안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개정안을 공개한 지 불과 이틀 뒤에 발생한 일이다.

주요 내용은 △KPI(핵심성과지표) 분야별 하위 10%에 개선명령서 조치 △개선명령서 3회면 경고장 발부 △경고장 2회면 정직(1주) △정직 2회면 징계위원회 회부 등이다. 월 3회 이상 지각할 경우 성수기 인센티브 지급을 제외하는 문구도 눈에 띈다.

지난달 7일에는 삼성영등포지피에이(영등포센터)가 유사한 내용의 ‘업무전달’ 공문을 하달했다. 공문에는 △월간 서비스 완결실적 60건 이하 대상자 서면경고, 경고장 3회면 저성과자 분류 △월간 기본실적 하위 10% 인원에 경고장, 경고장 3회면 저성과자 분류 △저성과자는 각종 시상에서 제외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장 라두식)에 따르면 이들 업체 외에도 유사한 지침이 시행되거나 구두로 전달된 협력업체가 적지 않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의 이 같은 행위가 불법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통상적으로 사업장 노동조건과 복무규율에 대한 규범은 그 명칭에 관계없이 ‘취업규칙’으로 분류된다. 이날 공개된 내용은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평가와 징계기준을 강화하는 것으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사례에 해당한다.

근기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노동자 집단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현주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동대문센터와 영등포센터는 노동자 과반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변경을 공고했다”며 “해당 공고는 위법할 뿐만 아니라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회에 따르면 한 협력업체 사장은 “(지침에) 서명하지 않을 거면 출근하지 말라”고 노동자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가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개별 노동자에게 서명을 강요하는 행위 역시 불법이다.

◇노조원 표적징계 확대되나=우려되는 대목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이 제시한 저성과자 평가기준이다. 수리서비스 노동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저성과자로 찍히는 이상한 기준들이 적지 않다.

영등포센터가 제시한 ‘개인별 성과관리 TOOL’에 따르면 무상수리 기간에 부품을 쓰지 않고 제품을 고쳐야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제품을 구매할 때 부품 교체를 포함한 무상보증서비스 비용을 지불한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아산센터의 ‘판정서 발행률’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이 구매한 제품이 불량인 경우 15일 안에 교환·환불할 수 있는데, 이때 수리서비스 노동자들이 “제품 불량이 맞다”는 판정서를 고객에게 써 주면 평가점수가 깎인다.

월간 서비스 완결실적 60건 이하인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분류한 평가기준도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라두식 지회장은 “수리물량은 노동자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콜센터에서 배당한다”며 “그동안 사용자들이 노조 조합원들에게 물량을 적게 배정하는 식으로 불이익을 줬는데, 이를 기준으로 저성과자를 분류하겠다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원 표적징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을 발표하면서 “부당해고 방지 안전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동계가 주장하는 쉬운 해고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권영국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정부 지침은 기업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성과지표로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까지 통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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