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기업 생산현장.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011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파업과 회사 직장폐쇄에서 비롯된 ‘유성기업 사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파업사태가 벌어지기 4년 전인 2007년 11월 영동공장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돌연사한 데 이어 이듬해 6월 같은 공장 황아무개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2009년 7월 아산공장 김아무개씨가 뇌출혈로 숨졌고, 같은해 11월 공황장애를 앓던 아산공장 김아무개씨가 운명을 달리했다. 파업이 진행되기 직전인 2011년 3월에는 산재요양 후 복귀한 장아무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고인은 회사가 “주간근무만 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회는 장시간 야간노동이 노동자들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고 판단했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연구소가 심야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상태였다. 지회는 회사를 상대로 노동시간단축을 의미하는 근무형태 변경을 요구했다. 하루 24시간 공장이 풀가동되는 주야 맞교대 시스템을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하자는 요구였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회는 회사와 협상을 벌인 끝에 2011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유성기업 노사의 이 같은 합의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의 기획·연출을 맡은 현대자동차다.

기획·연출 현대차, 각본 창조컨설팅

대관절 현대차와 유성기업이 어떤 관계에 있기에 유성기업 사태에 현대차 입김이 작용했던 것일까. 유성기업은 1960년 설립된 자동차 부품회사다.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링을 비롯해 실린더라이너·에어 컴프레서를 생산한다. 주로 완성차 업체와 조선소에 제품을 납품한다.

유성기업은 현대차 직서열 업체다. 현대차 공장 생산라인에 실시간으로 부품을 공급한다. 유성기업은 기술력과 함께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한 덕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는 ‘갑’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암묵적 룰 안에서만 가능한 얘기다.

2011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다는 유성기업 노사의 합의는 현대차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현대차 노사가 아직 교대제 개편 논의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원청도 합의를 못했는데 어디 감히….” 당시 자동차업계에 공공연하게 떠돈 얘기다. 원청업체가 노사합의에 따른 비용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이다. 한마디로 ‘갑질’이다. 현대차가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에서 메가폰을 잡게 된 이유다.

28일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공개한 검찰 수사자료는 현대차가 기획·연출하고, 창조컨설팅이 시나리오를 쓴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작전명 '금속노조 고사작전'

검찰 수사자료에는 유성기업이 2011년 5월13일부터 일주일간 3천300만원을 들여 침낭과 세면도구·채증장비용 배터리를 대량 구매한 내역이 나온다. 해당 물품은 일반 직원이 아닌 관리사원들에게 제공됐다.

지회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같은달 18일이다. 지회가 파업에 나서기도 전에 회사가 조직적으로 직장폐쇄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회사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직장폐쇄 기간 동안 회사측은 사설경비용역을 동원해 지회 조합원의 회사 출입을 막고, 파업 조합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정부와 언론도 가세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7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유성기업노조의 파업은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보수언론은 직서열 업체인 유성기업의 파업이 현대차 생산에 차질을 준다며 “금속노조의 알박기 파업”이라고 매도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 지회 조합원들의 이탈이 이어졌다. 이때부터 회사가 주도하는 제2노조 설립이 추진된다. 검찰 자료 중 ‘유성기업 노동조합 지원비용 지출내역’에 따르면 2011년 7월9일 제2노조인 유성기업노조 발기인모임에 회사가 16만7천원의 식대를 계산한 내역이 나온다. 같은해 10월17일 회사는 기업노조 간부들의 애로사항을 듣는다며 노래연습장에 가서 주대 27만1천원을 지불했다. 이런 식으로 회사는 2011년 7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기업노조 간부들에게 식사와 향응을 제공했다. 회사는 지회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가요주점을 찾기도 했다.

현대차와 창조컨설팅의 활약은 제2노조 설립 추진 시점부터 본격화된다. 현대차 구동부품개발실 강아무개 차장은 2011년 9월20일 유성기업 최아무개 전무에게 ‘(중요) 유성기업 현안협의’라는 제목의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전무님. 아래 안건 관련해 9월22일 오전 10시에 회의를 하고자 합니다. 유시영 사장(유성기업)님과 창조(컨설팅)측을 모시고 회의하고자 하오니 참고하셔서 참석 부탁드립니다.”

현대차 구동부품개발실 최아무개 이사대우는 같은날 부하직원 황아무개 차장과 강아무개 차장·권아무개 대리에게 ‘유성동향 일일보고(9월19일)’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에 가입한 인원이 적다고 타박하는 내용이다. 최 이사대우는 “신규노조 가입인원이 최근 1주일간 1명도 없는데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라”며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 290명 목표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명도 없는 이유가 뭔지 강하게 전달하라”고 채근했다. 그는 또 “매주 1회 회사(유성기업), 창조(컨설팅)를 불러서 주간 실적 및 차주 계획,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토요일 아침에 보고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장시간 노동·산재 문제 그대로 … 정부발 노동개혁의 미래

이명박 정부 시절 진행된 대표적인 민주노조 와해사건으로 꼽히는 유성기업 사태는 2011년 7월 복수노조 시행을 전후해 전개됐다. 파업과 직장폐쇄 이후 지회가 약해진 상황에서 설립된 기업노조는 복수노조 시행과 함께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했다.

노동조합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유성기업 노동환경은 빠르게 변해 갔다. 유성기업 재무제표를 보면 2011년 파업 이후 2년간 회사 당기순이익은 58% 증가한 반면 노동자 실질임금 총액은 1% 줄었다. 설비투자는 줄고 노동강도는 강화됐다. 유성기업 파업으로 타격을 봤다던 현대차는 어찌된 영문인지 같은 기간 유성기업에 대한 납품단가를 각각 21%·22% 높였다. 일종의 포상인 셈이다.

근본적인 변화도 일어났다. 유성기업은 기업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에서 ‘복리후생을 늘리고 인사·경영권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학자금 지원 등을 늘려 주는 대신 △조합원에 대한 징계권 강화 △인사고과 강화 △성과급 도입 △임금체계 개편 △인사제도(4HR) 설계 조치가 잇따랐다. 이 같은 유성기업의 교섭전략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정부 노동개혁이 노동조합 무력화를 전제로 하는 것도 유성기업과 일맥상통한다.

노동자들의 알 수 없는 죽음을 지켜보며 “밤에는 잠 좀 자자”고 터져 나왔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실종된 지 오래다. 유성기업 생산공장은 아직도 주야 맞교대로 돌아간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4년 산재·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 현황’에 따르면 유성기업은 재해율 15.53%로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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