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성 작가

TV를 켜면 온통 문재인·안철수의 싸움에 얽힌 온갖 정치 모리배들의 이합집산만 나온다. 자기가 무슨 한국의 잔 다르크라도 되는 양 한국노총마저 반대하는 노동법 개악이 들어간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거리서명에 나선 대통령만 비친다.


지금도 전국 수십 군데 사업장에서 매일 해고자 복직을 위한 집회나 농성이 벌어지고 있지만 방송을 타는 일이라곤 거의 없다. 심지어 분신을 해도 화면 아래 자막처리라도 되면 다행이다. 짧아야 2~3년이요, 길면 10년을 넘기는 지난한 투쟁의 현장에 가면 노동자 현실부터 노동운동 현주소까지 온갖 생각이 밀려온다.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위원장 이호동. 그는 이들 투쟁현장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가 책을 냈다. <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됐던 글을 모았다. 가두투쟁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라 제목도 <길에서 만난 사람>이다.

책의 전반부 ‘길’에 등장하는 20군데 사업장 노동자들은 직종도 사연도 다양하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천 리 길을 달린 보워터코리아 해고노동자들부터 정년퇴임 못한 전교조 해고자 조희주 선생 이야기까지 담았는데, 직종은 여러 가지지만 투쟁기간으로는 하나같이 대단하다.

3년째 복직투쟁 중인 사회보장정보원 해고자 봉혜영 분회장은 신참에 속한다. 농협을 상대로 7년째 싸우는 배삼영 지부장, 너무나 유명한 기륭전자의 10년 투쟁과 역시 3천일을 싸워 온 방종운 콜트악기지회장, 무려 21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강한규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세계적 기록에 들어갈 것이다.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의 1년7개월 파업도 파업기간에서는 아마도 세계적 기록으로 오를 듯하다.

책의 중반부 ‘사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노동운동판에서 저자와 인연을 맺었던 다양한 지원세력에 대한 이야기다. 노동자 역사교육에 30년을 바친 다정한 벗 박준성 선생, 노동자역사를 기록하는 한내의 정경원 실장, 노래로 연대하는 김호철·최도은·박준 같은 멋진 가수들, 거리에서 함께 최루액을 맞으며 투쟁하는 정기호·권영국 변호사 등 대개 지식인 출신이지만 한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존경스런 인물들의 이야기다.

아쉬움이 있다면, 21세기 전후 한국 노동운동 산증인들의 이야기를 담기에 일간지 칼럼은 너무 짧다는 점이다. 최소한 한 사람당 원고지 백 장 정도는 돼야 이들의 고귀함을 한 부분이나마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이 책은 주로 이호동 위원장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서술돼 있는데, 새로 쓴다면 당사자 생애사를 중심으로 정식으로 기록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책의 후반부 ‘만남’ 편에는 길 위에서 투쟁하는 이호동 위원장을 만난 이들의 증언들이 담겼다. 송경동 시인은 ‘강호동보다 이호동이 힘이 더 세다’는 제목으로 그의 투쟁성을 그린다. 좌파노동자회 허영구 대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의 정진우, 기륭전자 김소연, 현대자동차 최병승 등 노동현장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이 이호동 위원장의 열정을 증언해 준다.

책의 마지막 장 ‘꿈’ 편에는 전해투 위원장으로서 <참세상>에 기고한 논설들과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시사평론이 실렸는데 독특한 것은 맨 마지막에 실린 딸과의 인터뷰다.

딸바보로 유명한 이호동 위원장이 페이스북에서 ‘달링’이라 불러 유명해진 딸과의 대화에서 필자는 대답한다. 아빠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노동자 민중의 기록이 역사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아빠 생전에 혹시 그런 세상이 오지 않으면 다음 세대 사람들이 만들면 돼. 아빠는 그저 밑돌 하나 괴는 거지. 그것만 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의미 있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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