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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두려운 유통노동자들 "근무시간은 급증, 쉴 공간은 전무"노동자 44.7% 근골격계 질환 고위험군 … 61% "고객에게 괴롭힘 당해"
▲ 국가인권위원회와 전국감정노동네트워크 공동 주최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통업 서비스·판매 종사자의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정책제언 토론회에서 한 대형 마트 노동자가 현장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이마트 캐셔 이민정(49·가명)씨는 벌써 설날이 두렵다. 회사가 설 다음날 5시간 연장근무를 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나면 온몸이 다 쑤셔 앓아눕고 만다. 지난 추석 때도 겪은 일이지만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캐셔들은 의자가 있지만 손님이 많으면 앉을 겨를도 없다. 하루 중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 1시간 뿐이다. 정말 힘들면 10분 내로 밥을 삼키고 휴게실로 간다. 휴게실은 10명이 누우면 꽉 찰 넓이다. 매장 판매직원들은 관리자 눈을 피해 탈의실 찬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눕기도 한다. 평균연령 50대 여성들인 캐셔들은 다들 골병이 들었다. 이씨도 3년 전에 하지정맥류 수술을, 지난해 어깨 수술과 허리 통증 완화 시술을 받았다.

롯데면세점에 입점한 화장품 매장 직원 최민희(41·가명)씨는 임신 당시에도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병원에서는 이러다가 유산할 수 있다는 경고도 받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씨가 일하는 매장은 건물 9층. 휴게실은 건물 지하 2층에 있지만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 결국 비상계단에 숨어 박스를 깔고 쉬곤 했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퉁퉁 부어 아프고 모유가 흘러나오는 상태로, 억지로 웃으며 고객을 응대해야 했다. 몇 년 전까지 오후 7시30분이던 퇴근시간은 조금씩 밀리더니 지금은 저녁 9시30분으로 늘었다. 본사와 입점업체의 실적 압박도 늘고 있다. 최씨는 "점점 늘어나는 근무시간과 가중되는 업무스트레스 때문에 갑상선 암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을'은커녕 '병' 신분인 우리는 보호받을 데가 없다"고 한숨 쉬었다. 그는 "영업시간이라도 규제해서 보호조치를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44.7%가 근골격계 질환 고위험군

통계청의 2014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이민정씨와 최민희씨 같은 유통업 매장 판매종사자 중 임금노동자는 90만7천명이다. 서비스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의 노동조건 또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처우는 열악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발표한 유통업 서비스·판매 종사자의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들의 비참한 처우를 확인할 수 있다. 인권위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주요 백화점 등 유통업체 종사자 3천470명과 주요 사업장 114곳을 조사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4.7%가 목·허리·어깨 부위에 근골격계질환을 겪고 있었다. 의사 진료가 필요한 '고위험군' 수준이다. 우울증 고위험군도 26.4%에 달했다. 지난 1년간 업무상질병 진단을 받았다는 응답자가 31%로 나타났는데 방광염(17.3%)·족저근막염(7.3%)·우울증(7%) 순으로 많았다.

61%는 "지난 1년 동안 고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폭언(39%)가 가장 많았고, 폭행(3.9%)과 성희롱(0.9%) 순이었다. 응답자의 17.3%가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96.1%는 "의식적으로 고객에게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거나 "회사의 요구대로 감정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89.3%)고 응답했다.

영업시간 규제, 노동자 보호 위한 법개정 시급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은 장시간 노동, 휴게시설과 보호조치 미흡으로 육체적·정신적 건강 악화를 겪고 있지만 중층적인 고용구조와 연동돼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유통업체 고용구조는 소수 직영사원(원청이 고용한 정규직·비정규직)과 비직영사원(사내하도급직원·입점협력업체 직원·개인사업자 형태 전문판매직원)으로 구분되고 있다.

비직영사원이 전체의 75~85%나 된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기본적으로 원청의 영업시간과 방침에 의해 좌우된다. 원청이 경쟁적으로 영업시간을 늘리고 매출 압박을 주거나 과도한 고객서비스와 인사관리정책을 요구하면서 처우가 더 열악해지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유통산업발전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정부가 노동자 건강권 개선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법·제도적을 영업시간 규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성희  miyu@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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