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에서 말하는 단체는 누구와 누구를 뜻하나. 사용자와 노동자, 혹은 사용자와 노동조합을 뜻하는가, 아니면 노동자와 노동자 혹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뜻하는가.

답은 단체행동에서 말하는 단체가 누구와 누구를 뜻하는지를 보면 분명해진다. 사용자와 노동자, 혹은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같이 벌이는 단체행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체행동은 오로지 노동자와 노동자, 혹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단체로 벌이는 행동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단체행동으론 집회와 시위, 그리고 파업이 있다.

개인교섭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교섭은 대등한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등한 관계란 힘의 균형을 뜻한다. 자본가가 소유한 자본은 경제적 권력만 뜻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란 말이 드러내듯, 자본은 정치·사회·문화·교육·종교·사상 등 모든 영역에서 자본가가 권력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토대가 된다. 자본 권력을 가진 자본가와 개인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노동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교섭 혹은 개별교섭이란 노예제도에 다름 아님을 보여 주는 사례는 굳이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날 대한민국 곳곳에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국가가 중재자로서 법률을 통해 노동자와 자본가의 균형을 맞춰 준다면 개별교섭도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거짓말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 권력은 자본가의 계급적 이익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기능해 왔다. 국가 권력은 착취·폭력·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불법시하고 처벌해 왔다. 국가 권력은 노동자들이 단체로 모이는 것(combine)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노동자들의 모임을 음모와 반역 조직으로 낙인찍어 그 지도자와 성원을 처형했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 단체는 범죄단체로 낙인찍혔으며, 불법 조직으로 처벌받았다.

이런 반동적 상황은 19세기 말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변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단체인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 허용됐다. 체제 전복 음모로 여겨지던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은 합법화돼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정당한 시민권의 하나로 인정됐다.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층이 노동자와 계급적 타협을 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동자들이 단체로 모여 교섭하고 행동할 권리, 즉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그리고 파업권이 산업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국제 사회에서 마침내 인정된 것이다.

노동자 단체를 말살시키려 했던 나치즘과 파시즘이 2차 세계대전 결과 패배하고 국제연합(UN)이 탄생하자, 그 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는 1948년 제87호 결사의 자유 협약, 49년 제98호 단체교섭권 협약을 제정함으로써 노동이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님을 세계에 천명했다. 역사는 법률이 만들어져 노동자들의 권리가 실현된 게 아니라 반대로 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으로 일터 안팎에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쟁취된 결과를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지배계급의 타협으로 만들어졌음을 잘 보여 준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은 원래 노동자들이 단체로 모여 실천하는 것을 사적 폭력이나 공적 폭력을 동원해 분쇄해 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가 독재를 점차 민주주의로 전환시켰고, 그 역사는 세계사는 물론 한국사에서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어떤 권리를 누리는가는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한국 민주주의가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 정보기관과 군부, 그리고 경찰이 선거에 개입해 불법을 저지르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다. 법치주의(the rule of law)의 전제가 법 앞의 평등이라 할 때, 법치주의가 무너진 지 오래됐다. 엄밀한 의미에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법치주의는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 재벌-관료 연합으로 대표되는 한국 지배층은 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학계·종교·국방·교육·복지 등 체제 곳곳을 씨줄과 날줄로 엮고서 그 심장부에 똬리를 틀고 앉아 특권과 특혜를 누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법을 악용한 지배(the rule by law), 즉 독재 체제가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다시 단체다. 노동자의 단체성(collectiveness)을 복원해야 한다. 개별화된 노동자들을 단체로 묶어 낼 수 있는(combine) 일상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해야 한다. 단체성을 가로막고 훼손하는 법·제도를 찾아내어 고치고 없애야 한다. 노동자의 단체성을 북돋우고 키우는 제도와 질서를 수립하고 강화해야 한다. 일터 안팎에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단체로 모이고 교섭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정세에서 ILO 협약 제87호 비준 투쟁은 그 중심고리가 될 수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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