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자가 누리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노동자 권리가 침해당할 경우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산업평화도 불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 일원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노조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모니카 켐페를레(58·사진) 국제제조업노조연맹(인더스트리올) 사무부총장을 만났다. 오스트리아 금속노조 출신인 그는 금속노조와 섬유노조 통합 과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오스트리아노총으로 옮겨 집행비서로 일하다 오스트리아 의회(상원)에서 노조를 대표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 6월 인더스트리올 사무부총장에 선출됐다. 지난 21일 나흘간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한국 정부가 노동자 친화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한국 가맹조직과 노조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연대를 표하기 위해 방한했다.”

인더스트리올은 전 세계 143개국, 조합원 5천200만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 산별조직이다. 한국에서는 한국노총 금속연맹·화학노련·전력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화섬노조 등 5개 조직이 가입해 있다.

- 방한 기간에 어디를 다녔나.

“가맹조직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 노동상황을 들었다. 민주노총도 방문했다. 22일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면회했다.”

“노동계 신뢰 얻지 못하면 사회적 대화 말할 자격 없다”

- 인상 깊었던 내용은 뭔가.


“한국 노동상황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토론이다. 한국의 노조 권리가 악화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실수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기초인 노동자 권리를 지키지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느껴진다. 노조란 자주성과 민주성을 가지는 조직이다. 그런데 전교조 사태를 보면 노조가 자기를 대표할 사람을 자주적·독립적·민주적으로 선출하지 못하고, 그렇게 했다고 부정당하는 상황은 너무 비상식적이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면회 내용을 소개해 달라.

“한 위원장이 부당하게 구속돼 있는 상황에 대해 공유했다. 한국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국제적 연대를 조직할지에 관해 짧은 시간 논의했다. 이를 통해 한국 노동자 권리를 국제적인 상식 수준으로 어떻게 회복시킬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인더스트리올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각종 회의와 집회, 전 세계 가맹조직, 국제기구에서 한국 노동상황을 알리고 한국 정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겠다고 약속했다.”

- 한국노총이 최근 9·15 노사정 합의 파기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정부·여당이 합의를 짓밟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부·여당은 노동계가 반대하는 노동 5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22일 2대 지침까지 발표했는데.

“사회적 대화의 토대는 신뢰다. 정부 스스로 약속을 존중하고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정책과 법을 추진할 수 있나. 충격적이다. 배신의 행위로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사회적 대화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했다. 노동계 신뢰를 얻지 못하면 사회적 대화와 파트너십을 말할 자격이 없다.”

-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사회적 대화와 파트너십을 구분해야 한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낮은 수준의 테이블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파트너십으로 가야 한다. 말 그대로 참여다. 노동자에게 정보만 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를 참여시켜 동등한 입장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자면 신뢰가 중요하다. 일방이 허물고 지키지 않으면서 무슨 사회적 대화를 말하겠나. 노동계에 충분한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노동자 참여를 불온시하는 것 같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와 파트너십은 불가능하다. 정부 역할은 노사 양측이 서로 신뢰하도록 북돋는 것이다. 신뢰를 허무는 데 앞장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 정기훈 기자

“한국 정부 국제사회 동참하려면 ILO 핵심협약 비준부터”

- 전교조가 전체 조합원 6만명 중 해고자 9명이 있다는 이유로 법적 지위를 상실했다. 국제사회 시선은 어떤가.


“노조는 자기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는 조직이다. 조합원이나 임원이 누가 되든 간에 결정권은 노조에 있다. 더구나 해고자는 더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노조 역할이다. 정부가 나서 벌주고 재판 거는 게 상식적인가.

한국 민주주의 문제에서 비롯된 사안인 것 같다.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제98호) 같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국제기준은 노조 결사의 자유와 노조 결성과 참여,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다.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 일원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한국에서는 집회·시위 자유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경찰이 차벽을 세워 시위대를 고립시키고 물대포를 직사했다.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두 달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

“민주주의 유형의 문제다. 민주주의라도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누가 민주주의를 누리는가. 노동자와 국민이 누리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민주주의 수준은 집회·시위의 자유와 연결돼 있다. 노동자가 누리는 민주주의 수준을 보면 집회·시위의 자유 수준도 볼 수 있다. 보통 민주주의라면 노동자와 국민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장애와 간섭 없이 자유롭게 집회·시위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이를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시위를 하고 행진을 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행위다.”

“국제사회에 한국 노동문제 공식의제로 제기할 것”

- 한국 노동상황과 관련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한국 정부가 우리를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더스트리올은 세계 최대 산별조직이다. ILO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산별노조 각종 회의에서 한국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다음달 런던에서 열리는 국제노조협의회 정례회의에서 국제노총(ITUC)과 국제산별노조들이 함께 한국 문제를 다룬다. 6월 ILO 총회나 OECD 회의에서도 각국 정부가 참여한 가운데 한국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캄보디아에서 열린 인더스트리올 세계집행위원회에서 ‘한국 사정에 관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인더스트리올이 한국 문제를 공식의제로 삼아 대처하겠다는 뜻이다. 올해 10월 인더스트리올 세계총회에도 한국 문제가 공식의제로 올라간다. 인더스트리올이 운영하는 인터넷 뉴스를 세계 언론이 지켜본다. 국제온라인 캠페인 사이트인 레이버스타트(laborstart.org)에 소스를 계속 제공하겠다. 인더스트리올 지도부의 사실확인과 항의·지지를 위한 방문도 이어질 것이다.”

- 한국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부와 사용자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민주적인 노조는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산업평화의 출발이다. 이 같은 노동자 권리가 침해당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산업평화도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한국 정부와 사용자가 명심했으면 좋겠다. 한국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완강하게 지속하고, 노동기본권을 국제수준에 걸맞게 쟁취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으면 한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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