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간호사가 병원측에 둘째아이를 임신하고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임신계획이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병원측은 ‘여기서 임신하면 안 되지’라며 분위기를 잡더라고요. 결국 퇴사했어요.”

“여성은 전공의 4년 동안 두 번 임신하면 출산전후휴가 6개월 때문에 전공의 기간을 채울 수 없어 1년을 더 일해야 해요. 출산전후휴가 간다고 쉬는 게 아닌데 말이죠. 임신했다고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요.”

간호직의 39.5%와 여성전공의 71.4%는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임신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고용상 차별과 모성권 침해, 병원내 폭력·성희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인권교육센터 별관에서 ‘보건의료 분야 여성종사자 모성보호 인권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인권위에서 연구용역을 의뢰받은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연구책임자)이 간호사·간호조무사 977명과 여성전공의 15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10월 실태조사를 했다.

고용상 차별과 임신·출산 눈치에 성희롱까지

임상혁 소장에 따르면 간호직과 여성전공의 모두 고용상 차별에 노출돼 있었다. 채용시 미혼을 선호하는 경향에 대해 간호직 58.3%와 여성전공의 77.7%가 “그렇다”고 답했다. 채용시 신체적 조건이 영향을 미친다고 간호직 55.3%, 여성전공의 41.2%가 인정했다.

이들은 모성보호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동료나 선후배 눈치를 보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결정할 수 있느냐를 묻자 간호직의 39.5%와 여성전공의의 71.4%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표 참조>

모성권 인지 여부는 여성전공의가 간호직보다 훨씬 낮았다. 육아휴직에 대해 간호직의 96.4%가 알았지만 여성전공의는 54.4%만이 안다고 응답했다. 여성전공의는 출산전후휴가(92.5%)를 제외한 모성보호제도에서 50% 미만의 낮은 인지도를 보였다.

간호직 38.4%와 여성전공의 76.4%는 임신 중 야간근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호직 59.8%와 여성전공의 76.7%는 “자발성이 없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신체·언어폭력과 성희롱에도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간호직 44.8%와 여성전공의 55.2%가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체폭력(간호직 11.7%·여성전공의 14.5%), 성희롱(간호직 6.7%·여성전공의 16.7%) 순이었다.

보건의료 여성종사자 모성보호 시급

임상혁 소장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임신·출산과 관련한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상당 부분이 침해되고 있다”며 “임신 시기와 관련해 동료나 선후배 눈치를 보는 등 어떤 형태로든 보건의료 분야 전반에 걸쳐 임신·출산에 대한 거부·금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이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는 의료기관 경영상황과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의료기관 특수성, 근로자성과 더불어 교육생으로서의 이중적 신분을 가진 여성전공의 처지를 세밀히 고려해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건의료 분야 여성종사자 모성보호 방안 조사연구와 함께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준수, 관리·감독 강화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며 “보건의료 여성종사자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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