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삼성전자 LCD·반도체 사업장의 직업병 발병을 예방하기 위해 환경·보건 분야 전문가들이 사업장을 감시한다. 독립된 외부기구인 옴부즈맨위원회를 설립해 사업장 유해인자를 관리하고 역학조사를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는 출범 13개월 만에 삼성전자 직업병 협상에서 핵심의제 중 하나인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조정위는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조정합의서 설명회를 열었다. 조정합의서에는 김지형 위원장을 비롯해 직업병 피해협상 주체인 황상기 반올림 대표와 송창호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대표·백수현 삼성전자 전무가 서명했다. 2007년 3월 황상기 대표의 딸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불거진 삼성전자 직업병 사태는 9년 만에 재발방지 대책 합의안을 마련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직업병과 관련한 삼성의 사과와 보상 문제를 두고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이견이 적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옴부즈맨위원회 3년 활동 개시

삼성전자·반올림·가족대책위가 조정합의서에 서명함에 따라 옴부즈맨위원회는 이달부터 3년 동안 활동한다. 옴부즈맨위원장은 이철수 서울대 교수(법학과)가 맡았다. 위원회는 이 위원장과 산업보건·환경 분야 전문가 2인으로 구성된다. 이 위원장이 2명의 위원을 위촉한다.

당초 삼성전자는 직업병 예방을 위해 종합진단팀을 운영하는 방안을 고수했다. 고용노동부가 위촉한 반도체 보건관리 모니터링위원회에 전문가·근로자대표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반올림 관계자는 "종합진단팀이 예방조치와 관련해 삼성전자에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나 활동방식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옴부즈맨위원회 설립안을 수용함에 따라 외부기구가 사업장 안전보건을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위원회는 삼성전자로부터 사업장 산업안전보건관리 현황에 대한 정보를 받아 검토한 뒤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또 산업안전보건관리 현황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한다. 유해인자 관리실태를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위원회 역할이다. 삼성전자에 근무 중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퇴직자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하고, 직업병 의심사례 심층조사를 한다. 위원회는 올해부터 3년간 운영되며 필요할 경우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50여명의 인력을 보건관리 전담인력으로 배치해 직업병 여부를 진단하고,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제품에 대한 조사를 통해 직업병 예방에 나선다.

화학물질 영업비밀 족쇄 풀릴까

조정위는 장기간 공전한 끝에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옴부즈맨위원회가 출범해도 직업병 예방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반도체·LCD 공정에서 사용되는 다량의 화학물질을 화학물질 제조사가 영업비밀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반도체 공정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승인을 받지 못한 원인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유해 화학물질을 비공개한 탓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는 영업비밀로 분류된 화학물질 151개에서 발암물질인 에틸벤젠과 크레졸을 확인했다.

삼성전자가 영업비밀로 분류된 물질을 옴부즈맨위원회에 성실히 공개할지 여부가 직업병 예방 성패를 가르는 요건인 셈이다. 실제 조정합의서에는 위원회가 재해예방 활동을 위해 유해화학물질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영업비밀 관리규정 제·개정 의견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가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협상의 나머지 두 가지 의제인 '사과'와 '보상' 문제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가 자체 설립한 반도체 백혈병 보상위원회를 통한 피해자 보상을 중단하라고 요구 중이다. 이날로 98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반올림은 13일 오전 삼성전자 본관 앞에 설치된 농성장 앞에서 사과와 보상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 황상기 대표는 “사과와 보상 의제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반올림과 논의해 해결될 때까지 농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정합의서와 관련해 김지형 위원장은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면서도 “아직 (삼성전자 직업병 협상은) 완전한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