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맞은편. 엄마 손을 꼭 잡은 아이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대학생 구산하(23)씨는 이윽고 대형 패널에 소녀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뜯겨진 머리칼은 소녀가 처한 황폐한 상황을, 맨발은 도망가지 못하게 신발을 빼앗겼다는 뜻"이라며 소녀상의 세밀한 의미도 적어 넣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녀상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게 하기 위한 즉석 설명판인 셈이다. "(내) 농성 차례에 맞춰 강추위가 와서 당황스럽다"며 웃던 구씨는 "그래도 우리는 오늘 하루 활동하는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이 자리에서 20년 넘게 싸워 왔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31일 소녀상 옆에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일 협상안 폐기 대학생 대책위원회'의 농성이 이날로 12일째를 맞았다. 대학생들은 24시간씩 릴레이 농성을 벌이며 한·일 정부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소녀상 이전 반대를 외치고 있다.

경찰은 최근 대책위 소속 대학생 8명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대책위는 출석요구에 불응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정수연 대책위 상황실장은 "소녀상 이전을 반대하는 국민 행동이 거세질수록 외교적 협상력도 커질 텐데 정부는 거꾸로 이를 탄압하고 있다"며 "결국 정부는 겉으로만 이전하지 않는다고 하고 속으로는 빨리 치워 버리고 싶은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농성을 시작하고 나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양 말하던 언론 논조도 바뀌었고 시민들의 반대 행동 흐름이 만들어졌다"며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농성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시민들이 계속 찾아오는 만큼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씨는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없어 당한 설움인데, 국가도 대통령도 다 있는 지금 우리나라 정부가 앞장서서 '대승적 이해' 운운하며 역사를 지우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백남기 농민, 기아차 비정규직 문제 같은 우리 사회 수많은 아픔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대학생들도 아픈 자리들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6월 민주포럼은 소녀상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생들에 대한 무차별 소환장 발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포럼은 "2011년 소녀상 설치 이후 이 주변에서 열린 집회를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던 정부가 갑자기 이러는 것은 청년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위안부 합의 파기와 외교부의 합의 체결 과정 공개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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