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전략하에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합의라는 말부터 문제다. 국제사회가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합의한 사안은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역사적 평가다. 전쟁 범죄를 둘러싼 각국 입장은 다르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찬성하고 지지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서구 제국주의 입장에서 일본은 동맹국이었지 적대국이 아니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에게 일본의 전쟁 범죄란 1941년 일본군이 자국 식민지(홍콩·싱가포르·필리핀·베트남·미얀마·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를 무력으로 점령하던 때부터 시작된다.

우리 민족에게 일본의 전쟁 범죄는 청일전쟁(1894~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일본군은 고종이 파견한 조선군과 연합해 동학농민군 소탕 명목으로 잔인한 양민 학살을 저질렀다. 이 전쟁으로 청나라는 조선에서 영향력을 상실했고, 한반도는 일본과 러시아의 각축장이 됐다. 1902년 일본은 영국과 동맹협약을 맺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고, 러일전쟁(1904~1905년)을 통해 조선을 사실상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1905년 7월 미국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최종 승인받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일본의 전쟁 범죄는 미국 입장에선 2차 대전의 문제지만, 우리 입장에선 1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없었다면 식민지는 물론 남북분단과 한국전쟁도 역사적 경로를 달리했을 거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수백만 한민족의 운명도 방향을 달리했을 거다. 그 와중에 수천만 한민족에게 자행된 학살·살해·폭행·납치·강간·이산·착취 등의 악행도 그 세기를 달리했을 거다.

중국은 1911년 10월 신해혁명을 통해, 러시아는 1917년 2월 혁명을 통해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함으로써 구체제와 단절했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 들어선 집권세력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은 처음부터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를 지지했고, 1940년대 들어 일본이 자국 식민지들을 침략할 때까지 조선인들의 민족해방운동 투쟁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6년을 맞은 지금도 지배계급 역사 인식에서 미국·영국·일본의 사정은 1910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할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박근혜 정권과 아베 정권의 ‘위안부 합의’는 한국전쟁이 종료된 1953년 이후 유지돼 온 일본의 ‘평화’ 헌법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의 평화질서가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한국전쟁(1950~1953년)과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기술적 전쟁' 상태를 뺀다면, 지난 칠십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없었다. 이제 미국의 지배 엘리트는 중국의 발흥과 러시아의 귀환, 그리고 북한의 핵무장화라는 지구적 차원의 도전을 해결할 방편으로 외교 수단보다는 군사 대결에 의존하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미국에게 ‘위안부 합의’는 역사적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의 미군기지에서 행해진 생화학세균전 실험과 마찬가지로 한미일 군사동맹의 토대를 다지는 군사적 성격이 크다.

한국전쟁 이래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주도한 군사동맹은 미국-한국, 미국-일본 사이에 따로 존재하던 각각의 양자 동맹이었다. 지금 미국은 이 두 개의 양자 군사동맹을 하나로 묶어 미-일-한 3국의 단일 군사동맹을 만들려 한다. 미국 입장에서 아베와 박근혜의 ‘위안부 합의’는 3국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제거됐음을 뜻한다. 동아시아의 미-일-한 군사동맹을 필리핀·태국·싱가포르·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나라들과 구축한 군사동맹과 한데 묶어 태평양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한다는 게 미국의 복안이다.

‘위안부 합의’와 더불어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들고 있는 북한의 수소탄 실험은 한 달 전에 예견됐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10일 “자립적 국방공업의 기초”인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우리 수령님(김일성)께서 이곳에서 울리신 역사의 총성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45년 10월 북한은 평천에 기관단총 공장을 세웠다. 미국의 정보 제공이 없으면 절름발이 신세인 남한 당국은 김정은의 말을 무시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의 무력에 대한 안전벨트이자 남한의 압도적 재래식 무기에 대한 억지력이다. 그 목표는 내부적으론 재래식 무기 유지에 드는 자원을 경공업으로 돌려 인민생활을 개선시키고, 외부적으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로 195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쟁 상태(technically at war)를 끝내는 데 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이다. 중국이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1990년대 미국과 북한이 핵 합의를 벌였으나 미국이 북한 경제 원조를 이행하지 않고 북한에 적대적 태도를 유지했다. 이는 북핵 문제를 심화시켰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한국군이 신형 확성기로 걸그룹 노래를 틀고 김정은의 처 이설주의 핸드백이 수천 달러짜리임을 알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로 풀어야 하는 문제인데, 안타깝게도 북핵 정세에서 남한은 이명박 정권 이래 능동적 균형자에서 수동적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남북한 사이의 내적 모순은 물론 미국-일본 그리고 중국과의 외적 모순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 미-일-한의 지배계급이 구축 중인 3국 군사동맹과 북한 핵무장화에 맞서 동아시아 평화를 목적으로 한국-일본-미국-중국을 아우르는 노동운동의 국제연대가 시급하다. 남북 노동자단체 사이의 교류와 협력 증진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협력을 위한 노동운동판 6자 회담 구상을 본격화할 때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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