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났지만 새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결심을 벼리려 해도 이내 무기력해진다. 해결되지 않은 지난해 묵은 과제들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올해는 지난해와 비교된다. 지난해에는 적어도 ‘사회적 대화’로 시작했다. 공무원연금은 국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과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를 벌였다. 정부는 국회와 노사정위의 논의를 지원했다.

반면 올해는 분위기는 다르다.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정국은 그야말로 시계제로다. 여야는 오늘(8일) 쟁점법안 처리와 총선 선거구 획정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임시국회를 폐회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합의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 규탄 결의안이 유일하다. 새누리당은 북핵 위협에 맞서 핵무장론을 제기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질타했다. 여야는 급속히 북핵 이슈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여야 간 담판이 표류하면서 초조해진 정부는 이제 조급증만 남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30일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개정을 전제로 한 행정지침 초안을 발표한 것이 그 예다.

노동법안이 표류하니, 양대 지침이라도 시행해야 한다는 식이다. 노동부는 노동계의 반대에도 양대 지침을 공개한 것이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은 노사 간 핵심쟁점임에도 정부가 주도해 정리하겠다는 모양새다. 그야말로 무소뿔이다.

노동부는 2014년 12월 5대 노동법안의 모태였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노동부는 노사정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 보였다. 이러니 노사정 협상은 시작부터 요동쳤다.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주도하지 못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협상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또다시 같은 행태를 되풀이 한 것이다. 노동부는 이달 말까지 양대 지침을 논의하되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는 의사다. 다음달에는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니 노사정 합의 주체였던 한국노총마저 노동부를 비난하고 나선 것 아닌가. 한국노총은 “초안이라 하더라도 노동부의 입장을 담은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며 “초안 내용도 노동자 보호가 아닌 쉬운 해고를 담고 있어 향후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7일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회의에 불참하면서 노동부에 항의했다. 11일 개최되는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노사정 합의 파기와 노사정위 탈퇴도 논의된다. 연초부터 노동정국이 기로에 선 것이다.

‘북풍’만 정국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일방통행도 정국을 안갯속으로 몰아넣는다. 5대 노동법안 일괄처리를 주장하고, 양대 지침을 공개하고 논의를 압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만 나홀로 속도전을 벌인다면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임시국회가 소득 없이 종료될 경우 여야의 협상은 연장전에 들어갈 전망이다. 앞서 6일 새누리당은 9일부터 30일간 열릴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여야의 쟁점법안 협상을 좀 더 지켜보는 게 낫다. 노동부가 양대 지침을 밀어붙여 정국을 더 꼬이게 할 이유가 없다. 양대 지침의 경우 노동부는 시한을 정하지 말고 노동계와 협의해야 한다.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갈등만 부채질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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