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인물이 노무관리자로 등장하고, 개별 노조탈퇴를 유도한 뒤 간부를 징계하고 교섭해태하고….우리 병원이랑 똑같은 일 겪은 데가 한두 곳이 아닙니다." (이근선 보건의료노조 부천세종병원지부장)

대전 을지대병원이 노조와 교섭을 앞두고 채용한 행정부원장과 관련해 '노조파괴 전문가'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7일 보건의료 노동계에 따르면 을지대병원은 지난 1일 김아무개 행정부원장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를 두고 "병원측이 18년 만에 노조(을지대병원지부)가 재건되자, 노조탄압을 위해 채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부도 지난달 단체교섭을 요구한 뒤 사측이 차일피일 미루다 김씨를 채용한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가는 곳마다 노사갈등 악화

노조는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김씨가 노무관리자로 등장했던 사업장마다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조합원 징계나 노조의 파업이 반드시 뒤따랐기 때문이다. 김씨의 이름이 처음 병원 노사관계에 밝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1996년 대전성모병원 사건이다. 노조에 따르면 당시 김씨가 이 병원 총무팀 노무담당자로 있던 시기다. 그해 사측의 노조탈퇴 압박과 징계가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3개월 만에 조합원 300여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노조는 1999년 와해됐다.

그 후 2003년 김씨는 중부도시가스 노무팀장으로 다시 등장했다. 같은해 2월 설립된 중부도시가스노조는 그해 6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조측은 "노조 결성 후 회사측은 김씨를 채용하며 교섭 중 부위원장을 일방 인사발령 내고 개인별 노조탈퇴를 유도하며 교섭을 해태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같은해 7월 파업을 벌였고, 회사는 파업 이틀 만에 직장폐쇄에 나섰다. 3개월간 이어진 파업 이후 노조는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해 12월 부천세종병원은 김씨를 경영지원실장으로 채용했다. 부천세종병원 노사관계는 김씨 채용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보건의료노조 부천세종병원지부에 따르면 김씨가 노무담당자로 활동하면서 조합원 수는 170여명에서 50명으로 감소했다. 2005년 지부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과정에 김씨가 개입했다는 정황을 폭로해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병원측은 사측 교섭대표로 병원장 대신 김씨를 내세웠고, 교섭을 거부하며 단체협약을 일방 해지했다. 노조는 2006년 1월부터 9개월간 장기파업을 벌여야 했다. 이근선 지부장은 "일단 개별 뒷조사를 해서 각각 회유하거나 협박해서 노조 탈퇴시키고, 그렇게 무력화시킨 다음에 파업으로 몰아가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초 세종병원을 떠난 김씨는 같은해 9월 유신코퍼레이션 인사노무부 상무로 입사했다. 공공운수노조 유신코퍼레이션지부에 따르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도입 뒤 타임오프가 쟁점으로 부각됐던 시기다. 노조 관계자는 "10년째 기존 노무담당자와 별 문제 없이 교섭해 왔는데 김씨가 오자마자 노조 집기·비품 지원부터 딱 끊어지고 부서장을 이용해 노조탈퇴를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당사자 "노조 주장 허위"

김씨는 이듬해 7월 사라졌다가 세 달 뒤 10월 대구시 시지노인전문병원 행정부원장으로 등장했다. 체불임금 문제과 임금협약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고조된 시기였다. 노조측은 "김씨가 등장한 이후 사측이 불이익 처분을 시사하며 노조탈퇴나 체불임금 소송 취하를 압박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2012년 5월 "사측이 불이익처분 시사, 임금 위협, 해고협박을 통한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갈등은 계속돼 그해 6월 지부는 파업에 나섰고, 병원측은 직장폐쇄로 맞섰다.

그의 행적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10월 청주시노인전문병원에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충북지역지부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가 설립되자 병원측은 2014년 5월 기존에 없던 '행정부원장직'을 신설하고 김씨를 채용했다. 역시 노사갈등이 심화됐다. 노조에 따르면 김씨 채용 직후 사측은 일방적으로 근무형태를 변경하고 조합원에 대한 징계나 해고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같은해 충북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노사갈등과 파업 끝에 병원은 지난해 6월 폐업했다.

한편 병원측은 "김씨가 있던 사업장에서 노사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불법적 노동운동으로부터 법과 원칙을 지킨 노사관계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노사관계·인사전문가"라며 "노조의 주장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도 "병원 입장을 참고해 달라"며 "노조 주장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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