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육신을 넘어 정신조차 지배하려 드는 정권, 집단적 노사관계를 해쳐 노동자들을 갈라 놓으려는 정권."

해고노동자 출신에 ‘거리의 변호사’로 이름난 권영국(52·사진)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내린 평가다. 권 변호사는 민주노총 법률원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장을 지내며 노동계와 오랜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정부·여당의 비정규직 정책에 맞서기 위해 38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구성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최근에는 '시시한 시민'을 정당활동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가칭)시민혁명당추진위원회 추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날 선 말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절망감을 쏟아 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정치가 희망"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권 변호사를 만나 지난해를 돌아보고 올해 전망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시민혁명당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노동 이어 미래세대 생각까지 지배 노려"

- 2015년은 박근혜 정부가 반환점을 돈 해였다. 어떻게 평가하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같은 정권의 정당성 문제,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각종 공약 후퇴 논란으로 2년이 지났다. 어느 정도 논란이 정리됐다고 생각했는지 2015년에 본색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초 정부가 노동·공공·교육·금융을 4대 개혁과제로 공표한 것이다. 노동부문을 반드시 개혁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앞세우면서 방향성을 내보였다.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노동은 국민 생활을, 역사는 국민 사고와 이념을 결정하는 영역이다. 결국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미래세대 생각을 지배하고, 삶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 노동을 자본의 우위성을 확고히 하는 방식으로 제어하려 들었다. 개인의 정신과 육체를 정부가 주도해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정부·여당의 노동 5대 법안을 놓고 여야가 맞서 있다.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면.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파견 허용업무를 확대하는 것은 노동조건을 비정규직 중심으로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얘기다. 이미 전체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노동조건이 지나치게 열악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상적인 노동조건을 해체시키고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정상적인 국민의 삶도 후퇴시키겠다는 말이다.”

- 정부·여당은 경제를 살리려면 노동시장이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짧다.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여러 사회적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 자살률·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불안한 사회에서 경제만 안정되는 것이 가능할까. 내수 기반 경제체제를 탄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불안정 고용을 안정화하고, 임금소득을 키워야 한다. 재벌대기업이 요구하는 유연화를 정책방향으로 설정하면 국가 전체를 위기로 내몰 뿐이다.”

"일반해고 지침, 형식적 노사관계마저 흔들어"

- 정부는 청년고용을 갖다 붙이는 방법으로 노동개혁 당위성을 강변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년을 마치는 노동자가 100명 중 7~8명인 상황이다.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 창출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고령노동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청년일자리가 늘지 않고 노동개혁이 불가능한 것처럼 포장했다. 청년일자리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 계약직·인턴·파견직은 지금도 많다.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만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해법은 세 가지다. 먼저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능력이 있는 대기업이 변해야 한다.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다양한 간접고용을 제어하고,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해 정규직화를 유도해야 한다. 중소기업 일자리를 청년들이 갈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80~90%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꿈을 갖고 일하기엔 부족한 곳이 많다. 대기업과 중소 하청업체의 불공정거래와 부의 편중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가장 확실한 것은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만 줄여도 일자리가 60만개 이상 만들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가장 유효한 청년고용 정책인데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로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민중총궐기대회는 정부의 독선·독재 때문에 열렸다.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니까 국민이 최소한의 방어에 나선 것이다. 꽤 규모가 있게 치러졌다. 그런데 총궐기대회 이후 폭력시위냐 아니냐 하는 논란만 있었다. 정작 왜 민중이 광장에 모였는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가 짠 프레임에 의제가 묻혀 버렸다. 이어진 2차 총궐기가 더욱 규모 있게 치러졌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텐데. 대중의 결집이 개인이 겪는 절망감의 크기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노동개악을 포함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널리 알려 대중 동력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고용노동부가 전문가 간담회 형식으로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 정부안을 공개했다. 올해 노동정세를 어떻게 예상하나.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뒤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규제 프리존’을 만들어 거의 모든 규제를 풀어 주겠다는 내용이 있다. 노동정책도 이에 상응해 짜여졌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정부가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을 준비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이미 이를 추진하는 사업장이 무수히 늘었다. 그동안 최소한 집단적인 협의·교섭 과정을 통해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던 노사관계가 어그러질 가능성이 있다. 임금체계 변경이나 해고 같은 사업장 중대 현안에 대응해야 할 노동자들이 개별화하고 파편화할 우려가 크다.”

"시시한 시민이 정치의 주인 돼야"

- 20대 총선이 4월에 치러진다. 지난달 시민혁명당 창당을 선언했는데.

“야당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혼란스러운 국면이다. 이대로 가면 총선은 필패다. 13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 있지만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전체 야권 지지율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야당이 분열되기 전이라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 정치질서를 깨는 외부충격이 필요하다. 정치가 특별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시시하고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 기존 진보정당도 시민참여 정치를 표방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정규직·자영업자처럼 그들의 고통을 대변해 줄 조직을 아예 갖지 못한 사람이 많다. 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당이 절실하다. 유럽 사례를 연구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방면에 흩어져 있는 시민을 결집시킬 방안을 찾고 있다.”

- 2016년이 시작됐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나.

“지옥 같은 현실이다. 그러나 절박하고 절망적일 때 변화가 시작된다. 그때마다 새로운 역량을 모아 위기를 극복했던 역사적인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에서 바라보자. 혁명이라는 말은 주어진 운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타자에 의해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주체가 돼 어떻게 바꿔 낼지를 고민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시시하고, 보잘것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의 주인이 돼야 한다. 그런 의식이 깨어나면 아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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