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대 입법’이라고 쓰지만 노동자들은 ‘노동개악 5대 입법’이라고 읽는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며,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새누리당 노동입법에 대한 입장을 글로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하루에 한 편씩 지면에 소개한다.<편집자>
 

▲ 이영숙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일반분회 조합원

쿠폰에 적립 도장을 받았다면 무료음료 서비스 한 번 받고도 남을 정도로 직장을 옮겼다. 아르바이트·인턴·수습·파견직·계약직을 거치다 보니 누구는 스펙으로 채운다는 이력서가 이직경력으로 너덜너덜하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탓하다가도 은근히 ‘기승전조상’ 탓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흙수저다. 남들 공부할 때 학비를 벌어야 했고, 경쟁자들이 자격증을 딸 때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어느덧 불안한 서른이 됐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부터 따지자면 경력은 꼬박 10년을 채우지만 4대 보험 납부기간은 고작 44개월이다. 번듯한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4대 보험 가입 장벽도 높기만 했다. 주당 15시간 이상 일하면 고용보험 가입대상이라는데, 아르바이트는 그냥 ‘아르바이트’라서 안 되고, 특수고용직은 개인사업자로 취급하며 고용보험을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파견회사는 고용보험 바랄 거면 나가라며 대놓고 거부했다. 그나마 1년 계약직으로 일했을 때 4대 보험에 가입된 덕에 실업급여라는 걸 처음 받아 봤다.

당시 한 달에 70만원 안팎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딸린 가족이 없지만 식비와 월세, 각종 공과금과 차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했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일을 구할 수 있어 당장 알바를 구하는 대신 실업급여 수급을 선택했다. 그 시기 한 친구 놈도 회사가 폐업하고 5개월치 임금을 주지 않아 실업급여로 겨우 연명했다. 이처럼 실업급여는 임금체불이나 실업으로 생계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도록 해 준다. 특히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과 취업취약계층에게는 더욱 필요한 지원이다. 최근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정부·여당이 발표한 노동개혁안의 실업급여 개정안을 보자마자 한마디 툭 튀어나왔다. “어이가 없네!”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다. 실업급여를 악용해(?) 반복적으로 수급받지 못하도록 막고 예산부족 때문에 대상자 기준을 축소하고 금액을 낮추는 걸 개혁이라고 한다.

실업급여의 사회적 가치를 아는 정부라면 왜 실업급여에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원인부터 찾아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건 뒷전이고 되도록 실업급여 지출을 줄일 핑계부터 찾는 것이 개혁이고 대안일까. 청년실업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정치인과 언론·고용노동부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실업급여 개정안은 개혁도 개선도 없어 보인다. 취업취약 계층을 보호한다는 취지에는 더더욱 미흡하다. 더욱이 노동개혁안은 노동의 유연성을 한없이 강조한다. 그나마 실업급여처럼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만이라도 더욱 과감하고 확실하게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새 직장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난 감정소모를 불러온다. 소개팅에서 버림받은 멘탈 붕괴, 그 이상이다. 명탐정 코난이라도 된 듯 채용공고 몇 줄만 보고도 이 직업이 어떨지 추측해 내야 한다. 관심법을 이용해 이력서를 수없이 고쳐 쓰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간이며 쓸개며 다 내주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다져야 한다. 그럼에도 구직에 실패할 때면 자신감이고 뭐고 끝없는 절망감으로 곤두박질친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숨는다. 당장 내일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잔고도 비참하다.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만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삶의 가치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실업급여는 단순히 정부 재정문제를 넘어 수많은 국민의 기초생계고 재취업을 위한 버팀목이며 한 인격의 자존감을 뒷받침하는 인간적 생존기반이다.

실업급여를 단지 예산문제로 접근하는 정부는 그래서 가혹하다. 4대 보험조차 나 몰라라 하는 불법 파견직을 없애고, 아르바이트라도 4대 보험 가입을 적극 권장하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건강한 방안이 아니겠는가. 최소한 실업급여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는 노동부라면, 예산지출을 줄이는 방안을 찾기보단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과 대안부터 제시해야 한다. 그러진 못할망정 거꾸로 예산부족 문제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보다 궁극적인 대안인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의 처지를 해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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