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대상사건 / 대법원 2015. 11. 26 선고 2013다14965 판결

1. 사건의 개요

가. 사건의 경과

피고는 2001년 4월2일 한국전력공사에서 분사해 설립된 원자력 등 발전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으로서 산하에 울진원자력본부 제2 발전소(이 사건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분사 전인 1994년 1월12일 ‘원자력발전분야 인력최적화 방안’을 세운 후 그해 12월9일 ‘원전 비주력업무 운영개선 계획’에 따라 냉난방 관리, 열관리, 기술담당 발전작업 보조업무 등을 용역업체에 위탁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 발전소는 ‘원전 비주력업무 운영개선 계획’이 시행된 이후 발족한 신규 발전소로서 초기부터 비주력 업무를 용역업체를 통해 위탁·운영했다. 피고는 정식으로 발전소를 가동한 1999년 1월1일부터 발전작업 보조업무와 화학시료 채취업무를 한전KPS 주식회사에 위탁 운영하고, 2002년 11월18일 분사되면서 한국전력공사로부터 관리업무를 이관 받은 울진 3·4호기 옥외변전소(옥외변전소)에 대한 변전소 보조업무를 추가로 위탁·운영했다. 그 후 피고는 발전작업 보조업무, 화학시료 채취업무, 변전소 보조업무를 매년 혹은 격년 간격으로 수의계약 또는 제한경쟁입찰을 통해 한전KPS나 주식회사 한빛파워서비스(한빛)에 계속해 위탁·운영해 왔다.

원고들은 최초로 해당 용역업체에 입사해 이 사건 발전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후 피고의 용역업체가 변경되면 그 소속을 변경된 용역업체로 바꾼 것 이외에는 계속 동일한 업무를 해 오다가 2010년 6월4일 한빛으로부터 피고와의 위탁용역계약이 종료됐다는 이유로 해고통지를 받았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와 용역업체 사이의 용역계약은 그 실질이 위장도급이어서 피고와 원고들 사이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내지 불법파견이 성립한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법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나. 재판의 경과

2011년 11월29일 서울중앙지법은 용역업체의 실체를 인정해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지는 않으나 계약의 내용, 원고들의 업무수행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원고들은 용역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돼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은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다고 봤다. 그에 따라 2007년 7월1일 이전에 2년이 경과한 원고들은 2년 경과한 시점부터 피고와의 직접 고용이 간주돼 근로자지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그 이후 2년이 경과한 원고에 대해서는 피고에게 직접고용 의무에 따라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피고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고 원고들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성립을 다투는 부대항소를 했으나, 2013년 1월25일 서울고법은 1심과 같은 취지로 피고의 항소와 원고들의 부대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피고는 재차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지난달 26일 같은 취지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2. 판결의 주요내용

① 용역시방서에 기재된 발전기술 지원업무와 관련해 발전보조업무, 화학시료 채취원, 변전소 보조원의 업무 중 상당수는 일정 수준의 기술과 숙달을 요하는 것으로서 피고 정규직원의 교육이나 지시가 없으면 해당 원고들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며, 피고는 정규직원을 통해 원고들에게 업무수행에 관해 교육을 실시했던 점 ② 일근제인 발전운영부 보조업무 수행자, 화학시료 채취원의 경우 해당 원고들은 피고 정규직원과 같은 사무실 내에 자리를 배치받고 같은 회의에 참석해 필요한 업무지시를 받는 등 피고 정규직원과 혼재돼 근무하면서 각종 지시에 따른 업무를 수행했다고 보이는 점 ③ 1일 3교대로 운영되는 발전보조원, 변전소 보조원의 경우 야간 또는 휴일근무시 해당 원고들에 대한 출근 확인을 용역업체가 아닌 피고 정규직원이 했으며, 교대근무 배치 또는 그 변경에 관한 권한은 용역업체가 아닌 피고에게 있었고, 발전보조원과 발전운영부 보조업무 수행자 간의 순환근무제 시행, 변전소 보조원의 근무제 변경과 같이 근무방법 변경에 관한 사항도 피고가 주도적으로 결정해 시행한 점 ④ 발전보조원, 화학시료 채취원, 변전소 보조원의 경우 해당 원고들의 업무수행 결과물에 대해 피고 정규직원이 확인하고 결재란에 서명한 점 ⑤ 근무복·안전화·안전모 등을 제외한 원고들의 업무수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장비 및 물품을 피고가 제공한 점 ⑥ 원고들의 특근·대근·휴가 등 근무태도에 관한 사항도 피고가 관리·통제했으며, 용역업체는 사후적으로 특근에 관해 보고받았을 뿐, 그 실시 여부나 시기 등에 관해 아무런 관리·통제를 하지 않은 점 ⑦ 원고들은 그 근무기간 동안 업무와 관련해 피고의 지시나 감독을 받았을 뿐 용역업체로부터는 어떠한 지시나 감독을 받은바 없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들은 용역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돼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 위법이 없다.

3. 판결의 의미

위 판결은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남해화학 사건의 판결 기준을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 사건은 기존 판례에 비추어 크게 특이할 점은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용역업체의 역할이 노무관리 중 4대 보험 관리와 급여지급 정도에 머물러 있음이 너무도 명백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용역업체의 형식적 독립성 여부를 불문하고 노무대행기관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을 너무도 쉽게 부정한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판단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 원자력발전소에도 이와 같은 불법파견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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