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17. 시가표준액 vs 실거래가격

어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다는 송씨, 세 들어 살던 가게를 아예 인수했는데 취득세를 내려고 하니 법무사가 말해 준 금액과 너무 차이가 났다. 법무사는 “법인과 거래한 것이니 실거래가가 맞다”고 하는데 담당 공무원은 자세한 설명도 없이 시가표준액 기준으로 취득세를 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시장은 사실상 망한 곳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손님이 있을 법한 초저녁 무렵에 찾아갔는데도 시장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인근 횟집에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암만해도 노량진시장이나 인근 소래포구처럼 횟감으로 생선을 사 가는 대신 횟집에서 직접 주문해서 먹기 때문인 것 같았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송씨 곁으로 발길을 옮겼다.

“말도 마십시오. 이곳은 이미 상권이 무너졌어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드디어 내 가게를 가졌다고 축하한다고들 하는데, 가게 주인이 보증금을 갖고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려고 할 수 없이 인수한 걸 알면 그런 소리 하지 못할 겁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리고 불행은 한꺼번에 닥친다는 말도 틀리지 않아 보였다. 손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닐 텐데 세금까지 속을 썩이다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이번만큼은 성과를 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안 되는’ 이유만 나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전조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초조했다.

“지방세법에 따르면, 법인으로부터 구입한 부동산의 경우에는 시가표준액이 아닌 실거래가액을 기준으로 취득세를 납부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약간 ‘티미하게’ 물었다. 그러나 이미 논리 무장이 끝난 듯 담당 공무원은 법조문까지 줄줄 외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법인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 문제가 된 부동산(상가)의 소유자인 ○○어시장은 법인격이 없는 민법상 조합입니다. 비법인사단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금번 부동산 거래는 개인 간 거래로 볼 수밖에 없어 부득이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취득세를 계산하라고 한 것입니다.” 법인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인이 아니고, 따라서 ○○어시장조합이 발행한 서류는 ‘법인장부’로 볼 수 없다는 얘기였다. 지방세법(제10조 제5항 제3호)은 “…법인장부에 의해 취득가격이 입증되는 취득”은 사실상 취득가격을 과세표준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법인장부가 부인되는 상황에서는 더는 논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비상시에 쓰려고 숨겨 놓은 계책을 꺼내 들었다. “부동산 등기부 등본에는 ○○어시장이 소유자로 등재돼 있습니다. 법인이 아닌 ‘비법인사단’도 등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겁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툭 던졌던 것인데, 정색을 하고 받는다. “부동산 매도자인 ○○어시장조합은 부동산등기법 및 ‘법인 아닌 사단, 재단 및 외국인의 부동산 등기용 등록번호 부여 절차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시로부터 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종합어시장’ 명의로 보존 등기를 한 것뿐입니다. 이를 이유로 지방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인’임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그의 논리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담당자는 마지막 한 방도 가지고 있었다. “○○어시장조합 관련해서 이제껏 실거래가액을 과세표준으로 해서 신고가 된 전체 건에 대해서도 취득세를 추가 징수할 계획입니다.” 정말 궁색하면 써먹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형평성’ 문제를 단박에 무력화했던 것이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부과의 적법성을 떠나 행정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었다.

18. 왜 나만 단속하느냐고요

○○동 네거리는 항상 불법 주정차로 골머리를 앓는 곳이다. CCTV를 설치하고 길 양쪽으로 현수막도 걸어놨지만, 불법은 줄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도 수십 명이 단속에 희생(?)된다. 그 희생양 중 한 명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인근에 공영 주차장이 건설되는 바람에 교통이 혼잡해 최근에는 단속을 하지 않았는데 유독 CCTV 촬영 각도에 들어온 차량만 단속이 됐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스티커를 무려 열 장이나 발부하다니, 열 받을 만했다.

왕복 4차선 도로가 2차선으로 줄어 있었다. 무사히(?) 진입했더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최소한 두 번 정도는 신호를 더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도로 한편으로는 먹자골목이 길게 형성돼 있고 그 맞은편은 대형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불법 주정차가 성행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영 주차장을 만든다고 트럭들까지 수시로 드나드니, 6월 한낮의 거리는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어렵사리 불법(?) 주차를 하고, 장씨의 자동차가 단속된 곳으로 향했다. 어림잡아도, 딱 거기까지가 CCTV 단속 구간으로 보였다. 이제는 인근 상인들 얘기를 들을 차례였다.

“요즘은 단속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단속이 떴는데 공영 주차장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단속 차량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상인들 말이 주차장이 완공될 때까지는 단속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요.” 카더라 통신이었지만 설명이 워낙 구체적이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몇 집을 더 돌아도 한결같이 단속 중단 얘기만 해대니 더더욱 장 씨의 주장에 신뢰가 갔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이 벌어졌다. 아예 그림자도 볼 수 없다던 단속 차량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현장을 찾은 걸 미리 알았나 싶을 정도로 타이밍이 절묘했다. 단속 요원을 불렀다.

“이곳은 당분간 단속하지 않는다고 했다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상인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며 공격적으로 물었다. “누가 그러던가요? 저희는 그런 말 한 적도 없고 특별히 단속을 하지 않는 지역이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곳 상인들의 민원이 많아 웬만해선 영업시간에는 단속하지 않습니다.” 말은 에둘러 했지만 단속을 자제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마침, 장씨가 약속 시각보다 이른 시간에 모습을 나타냈다.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이것 좀 보십시오. 제가 이제껏 받은 주차위반 스티커입니다. 두 달 동안 무려 열 장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요. 단속 사실을 알았다면 제가 같은 잘못을 계속 저질렀겠습니까. 제 직장이 이 근처인데요, 공영 주차장이 완공될 때까지 단속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얘깁니다. 저쪽 한번 보십시오. 저 많은 차 중에 딱지 떼인 곳이 하나라도 있나 말입니다.” 정말이지 주정차위반 스티커가 붙여진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주정차 단속 구간’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 옆에 주차돼 있는 차 유리창에도 스티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곳은 단속하지 않으면서 왜 CCTV는 단속을 하느냐 그 말씀이네요.” “예, 맞습니다. 게다가 저 같은 경우는 며칠 전에 스티커 열 장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두 달 전에 단속한 것도 포함돼 있더라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불만의 근저에는 ‘차별’과 ‘통지 위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충의 단골손님인 “왜 나만”이 불만의 시작이라면 통지 ‘폭탄’은 분노의 결정판 같은 것이었다. 형평성은 원래가 시비하는 것 말고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철옹성 같은 ‘놈’이다. 더군다나 CCTV 구간이 혼잡한 네거리 주변이어서 다른 지역과 달리 ‘유예와 예외’를 적용할 수 없다는 데에야 더는 어디서 싸울 ‘꺼리’를 찾겠는가. 그러나 열 장의 통지 폭탄은 말이 돼 보였다. 이사를 가는 바람에 통지서를 수령하지 못했고 그러는 바람에 위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주정차위반을 계속하게 된 것이니 바뀐 주소지로 최초 통지된 스티커 분부터만 과태료를 내게 해달라는 주장이었는데, 일리가 있었다. 전부 다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부분만 빼 달라는 게 아닌가.

그러나 담당 부서는 냉정했다. 법 어디에도 그런 규정이 없단다. 자신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통지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납부기한 초과에 따른 가산금은 부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것 정도가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다. 억울하면 소송(비송 절차)하라는, 또다시 하나 마나 한 안내로 민원을 종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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