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청년 미취업자 고용률을 5%로 상향 조정하고, 이를 대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에게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와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동계와 야당의 요구가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노동관련법의 주요 내용이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국회 처리를 약속한 경제민주화 관련법에 포함된 노동관련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이다.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 경제참모 역할을 했던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두 법안은 차별시정 신청권을 노조에 주고 임금과 성과금·상여금을 차별해서 주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비정규직 보호는 비정규직 확대로, 청년고용은 임금피크제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정치권이 선거철 노동자들의 표만 노린 법안을 발의했다가 나 몰라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기업 5% 청년고용 의무화" 3년 후 "반대"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2012년 5월 19대 국회가 개원한 뒤 같은해 12월 대선까지 120여건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관 법안이 발의됐다. 상당수를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했는데, 내용이 지금의 새누리당 기조와 큰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이한구 의원이 그해 5월 연달아 발의한 3건의 법안이다.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 제정안과 기간제법·파견법 개정안이다.

사내하도급법은 수급업체 교체시 원사업주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고, 복리후생에 대한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노동계는 불법적인 사내하청 사용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그보다 새누리당 내부 이견으로 법안이 유야무야됐다.

새누리당이 대선공약으로 내놓았던 기간제법·파견법 개정안도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기간제법 개정안에는 비정규직에게 지급돼야 하는 ‘임금 등’의 내용을 명확히 해서 상여금과 경영성과금, 복리후생에 대한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차별시정 신청권을 노조에 주거나 한 명이 차별 인정을 받으면 동일조건 노동자가 별도 절차 없이도 그대로 효력을 인정받는 차별시정제도 개선안도 담고 있다. 특히 사용자가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차별을 할 경우 손해액의 10배 이내에서 징벌적인 보상을 명령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파견법 개정안도 눈에 띈다. 야당 의원들이 새누리당 5대 법안에 맞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고용 관련법은 사실 대선 전에 새누리당 의원이 내놓은 것이다.

김태원 새누리당은 2012년 8월 발의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에서 공공기관에만 적용되는 청년 의무고용률(3%)을 5%로 늘리고, 대기업에까지 적용하도록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로부터 한 달 뒤 당론으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은 지금 의무고용률 상향 조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을 치르면서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해 청년일자리 창출과 연계하겠다”고 공약했다. 새누리당이 대통령 대선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럴듯한 법안을 내놓았다가, 시일이 흐르자 슬그머니 반대로 돌아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표만 노리는 구태선거 반복되나"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선 전 8개 노동관련법을 당론으로 발의할 정도로 대선 핵심 의제로 노동을 지목했다.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는 기간제법·파견법·직업안정법 개정안은 물론이고 사회안전망 강화하는 고용보험법·최저임금법 개정안, 노동시간단축과 노동자 범위를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실업자 등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하나같이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다양한 법안과 공약을 제시했지만 모조리 공수표가 된 상황”이라며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법안과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과거 '고무신·막걸리 선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구태를 보여 준다”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정치권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법안을 발의하고, 선거가 끝나면 실행할 의사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감독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