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현대중공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불황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바지사장들의 주먹구구식 경영행태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노동자 경영참여를 확대해야 합니다.”

백형록(55·사진) 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민주파로 분류되는 백 위원장은 지난 10월 치러진 노조 임원선거에서 중도성향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위원장에 당선됐다. 투표 참가 조합원의 61.37%가 그를 지지했다. 전임 정병모 위원장에 이어 민주파 집행부의 연임이다.

이달 1일 임기를 시작한 백 위원장은 최근 재개된 임금협상과 내년 사업계획 구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임금협상 연내 타결이다. 내년 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올해 안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가 임금인상으로 시간을 끌기에는 조선업계 경영난이 심상치 않다. 증권가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빅3의 올해 적자가 총 7조8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1조1천45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정부와 금융권이 조선업 재편에 나선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군소업체들이 통폐합되고 최대 1만여명이 감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백 위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회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전문경영인 체제를 표방하는 현대중공업의 경영방식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백 위원장은 “임기 2~3년에 불과한 월급쟁이 사장들은 단기성과에 급급해한다”며 “중장기적 안목으로 조선산업을 이끌어 갈 능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의 경우 이제라도 최대 주주가 책임경영에 나서야 하며, 바지사장들의 부실경영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노동자 경영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5일 오전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백 위원장을 만났다.

민주파 집행부 연임 "당선 예상했다"

- 10월28일 노조위원장에 당선해 이달 1일 임기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지내나.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임금교섭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으고 있다.”

- 정병모 전 위원장에 이어 민주파가 연임했다. 당선을 예상했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조합원들의 정서가 달라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회사 편을 들거나, 임금·복지 이외 사항에 관심을 두지 않는 노조에 대한 염증이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노조를 원한다. 전임 집행부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선된 바 있고, 이를 계승한 후보가 나였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조선업종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1조원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조선산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나 불황일 때나 한결같이 열심히 일했다. 문제는 부실경영이다. 경영진들은 위기 예측도, 위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어려움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 현대중공업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표방해 왔다. 경영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니라 낙하산 인사 체제다. 전문성도 없고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가 경영진으로 내리꽂히는 구조다. 월급쟁이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해법을 찾나. 실적을 올려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생각뿐이고 연구개발은 뒷전이다. 그들이 무리한 수주에 나섰다가 지금의 상황을 맞았다고 본다.”

"낙하산 인사보다는 재벌 세습경영이 낫다"

- 최근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전무 승진인사가 있었다. 오너 경영체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재벌 세습경영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그래도 낙하산 인사보다는 세습경영이 낫다. 책임경영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조합원들만 해도 현장에서 20~30년씩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런데 경영진들은 2~3년 왔다 가면 그만이다. 회사 발전을 위한 장기적 안목이 없다. 최대주주 일가가 경영일선에 나서 책임경영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최대주주 일가가 경영일선에 나선다고 해서 책임경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오너 경영체제로 운영되는 다른 기업 사례를 봐도 책임경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회사를 가장 잘 이해하고, 회사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바로 노동자들이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부실경영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조는 그동안 꾸준히 경영참여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조선업종 고용문제가 심각하다. 현대중공업도 사무관리직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조선산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직원을 줄여야 할 정도로 회사사정이 어려운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지 따져 봐야 한다.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던 사람 중 상당수가 계약직으로 재취업했다. 일부는 기존보다 근무조건을 낮춰 계열사로 들어갔다. 논란이 됐던 고졸 여사원 희망퇴직자 자리에 나이 어린 신입 계약직이 들어와 일하고 있다. 잉여인력이 많아 구조조정을 시행한 것이 아니다. 더 싼 임금으로 인력을 부리기 위해 사람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 생산직 고용 상황은 어떤가. 직영보다 사내하청 고용불안이 심각한 것 같다.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에도 회사는 직영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 자연퇴사로 인력이 줄어도 회사는 직영사원을 뽑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외주·하청인력으로 채웠다. 해양부문 물량이 넘쳐날 당시에는 하청인력 규모가 직영의 8배를 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 고용불안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 재가입 고민 중"

- 현대중공업 하면 중대재해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매년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는데도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작업중지권 도입에 합의했다. 위험상황이 발생할 경우 노조는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물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산업안전 문제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는 노동개악을 그만두고 이런 문제를 놓고 노사정 대타협을 해야 한다. 조선산업 불황에 대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

- 현대중공업노조가 2004년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지 11년이 지났다. 민주노총 재가입이나 산별 전환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고민 중이다. 민주노총 가입이나 산별 전환은 노조 집행부만의 의지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산별노조로 크게 뭉쳐야 한다는 점을 조합원들에게 설득하고 동의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조합원 교육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 최근 임금협상이 재개됐는데 연내 타결이 가능한가. 올해 안에 교섭을 마무리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노조는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 중이다. 올해 안에 협상을 끝내야 내년 사업에 집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협상 테이블에서 일정 부분 양보한 안을 내놓을 생각이다. 회사측도 추가 제시안을 적극적으로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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