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고가의 수입 자동차를 빌려 타던 K씨, 운용리스 계약이 끝나자 당초 약속된 대금을 지불하고 리스회사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취득세를 납부하기 위해 시청을 들렀는데, 리스회사 말과 달리 담당 공무원은 차량 구입 가격(실거래가액)을 과세표준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시가표준액에 비해 구입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서란다. 근거와 규정을 요구해도 막무가내라며 호민관의 개입을 요구했다.

자문위원들과의 오찬 모임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중년의 신사 한 분이 호민관 사무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럴 땐 과장된 응대가 특효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너스레를 떨면서 사무실 안으로 밀다시피(?) 그를 안내했는데, 엉거주춤 서서는 명함을 나에게 건넨다. 명함과 정장이라, 아무튼 이곳에서는 드문 광경이다. ○○주식회사 대표이사라 씌어 있다. 어쩐지 있어(?) 보인다 했다.

“리스를 이용해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차 가격이 1억원이 좀 넘습니다. 고가지요. 그런데 이번에 리스 계약이 만료돼서 차량 소유권을 이전하려고 하는데 취득세를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내라는 겁니다. 리스회사가 말한 것과 너무 달라 당황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중했다. 명함도 그렇고 입성도 그렇고 아무튼 그는 달랐다. 더구나 ‘리스’를 말하다니. 리스라는 말이 그의 입 밖으로 나온 후로는 줄곧 약간의 흥분이 나를 감쌌던 것인데,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나의 전공 분야(?)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과 행정은 어색한 조합이다. 그 어색함에 민원까지 더해졌으니 생경하다고 해야 맞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난, 뭐가 그리 신나는지 물 만난 뭐처럼 연신 묻고 또 물었다. “운용리스를 하셨나 보죠?”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갑작스러운 잘난 체(?)에 그가 놀라고 있었다. ‘아니, 이 자가?’ 뭐 이런 식의 반응 말이다. 내가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의 말이 빨라졌다. 좀 전 사무실 앞에서의 망설임이 ‘말해 봤자 알아나 듣겠어?’ 하는 불신 내지 무시에서 비롯된 것임을 웅변이라도 하듯 말이다. “잘 아시겠지만, 운용리스의 경우는 리스 계약이 끝나면 리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리스회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내고 차량 소유권을 가져오기도(양수) 하고 리스회사에 반납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중고 시세보다 사는(양수) 가격이 유리하면 소유권을 가져오고 그렇지 않으면 반납하는데 이와 같은 선택권을 리스 이용자가 갖는 계약이 운용리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리스회사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금융기관’입니다. 따라서 금융회사의 금융거래 내역을 법인장부로 인정하는 현행 지방세법에 따라 운용리스의 경우에도 취득세는 시가표준액이 아닌 실거래가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계산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껏 수년 동안 다들 이런 방식으로 취득세를 내 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곳 담당자만 시가표준액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취득세를 낸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납된 취득세를 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스회사에서 변호사와 회계사까지 대동해서 설명해도 막무가내입니다.”

한걸음에 세정과로 달려갔다. 우스갯소리지만, ‘니들이 리스를 알아?’ 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고집불통이라는 문제의 담당 공무원이 없어 애먼 그의 상관과 논쟁에 들어갔다. “지방세법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고 여러 판례도 ‘취득가격이 증명되는’ 경우에는 실거래가액을 과세표준으로 한다고 했는데, 리스회사에 의해 증명된(계산서 발행) 리스 차량인데도 실거래가액 대신 시가표준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취득세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뭡니까?” 원칙을 밝히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던 셈인데 상대가 예상보다 빨리 ‘아픈 곳’을 치고 들어왔다. 상당한 공부가 이미 돼 있었던 모양이다. “정당한 운용리스라면 실거래가액과 시가표준액 간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게 정상이겠지요. 정부에서도 이 경우에는 당연히 실거래가액을 인정하도록 지도하고 있고 저희도 그렇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경우는 실거래가액이 시가표준액보다 형편없이 낮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리스 계약이 종료되고 나서 모든 리스 계약자들이 반납 대신 ‘양수’(인수)만을 택한다면(합리적 추론을 포함해) 이러한 계약을 운용리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변형된 혹은 불법적(?)인 운용리스의 경우에만 실거래가액 대신 시가표준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으라고 한 겁니다.” 반박할 게 별로 없는 논리였다. 중고 시세는 1천만원인데 500만원에 샀다면서 취득세는 500만원을 기준으로 내겠다고 하는 꼴이니 설사 세정 당국이 아니라도 이에 동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궁색할 뿐 반박 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묘수 아닌 묘수를 찾아냈다. 궁하면 늘 기대는 방법이다. “운용리스 처리 기준까지 언급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리스에 대한 오랜 논쟁과 마주해야 합니다. 예컨대, 리스가 갖는 금융적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할 것이고 취득세 이중 부과 주장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답을 해야 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는 리스회사들이 현행 리스회계기준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벌어진 측면이 있는데요, 있는 그대로의 법조문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될 지자체가 ‘해석’의 영역까지 나간 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정부의 유권해석이나 행정심판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납 취득세 추징을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어려운 얘기고, 솔직히 소싯적에 배운 지식이기도 했기 때문에 말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들 게 뻔하고 더구나 이 문제는 지자체 차원에서 결정될 문제도 아니었다. 더구나 수천수만에 이르는 리스 이용자와 리스회사 그리고 지자체가 모두 관련된 대형 이슈로 이미 발전해 버렸으니 공을 정부와 전문가에게 넘기자고 제안한 것인데, 그 대쪽 같은(?) 공무원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미 미납 취득세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던 일단의 그룹이 이에 불복해 심판을 청구한 상태였으니 그 결과에 따르자는 나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으리라. 세원 발굴의 영웅으로 우뚝 설 것인지 아니면 대책도 없이 벌집만 쑤신 무대포로 기록될 것인지, 그의 운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결말, 두 번의 반전

최근까지 두 번의 반전이 있었다. 시의 처분(취득세 부족세액 징수)에 불복한 시민들이 경기도지사에게 제기한 ‘심사청구’에서 시가 이긴 것이 그 첫 번째인데 처음부터 시가 무리하게 처분을 강행했다고 믿었던 나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도지사 결정에 불복한 리스 이용자들이 조세심판원장을 상대로 이제는 ‘심판청구’를 했고, 그곳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두 번째 반전인 셈이다. “법인장부 등을 통해 취득가격이 증명되는 한 실거래가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취득세를 계산한 것은 적법하다”는 청구인(리스 이용자)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았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이라도 법으로 규율되지 않은 것을 강제하면 시민들만 힘들어지는 법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래요?” 한마디 내뱉는 것으로 기나긴 싸움을 ‘잊으면’ 그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친정(?)인 리스회사들이 곤경에 처하지 않았고 시민들도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니 정말이지 다행이다.



[취득세 과세표준]
취득세의 과세표준은 취득자가 신고한 가액으로 한다. 다만, 신고 또는 신고가액의 표시가 없거나 그 신고가액이 시가표준액보다 적을 때에는 그 시가표준액으로 한다. 그러나 판결문·법인장부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에 따라 취득가격이 증명되는 취득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취득가격 또는 연부금액을 과세표준으로 한다.(지방세법 제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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