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무기계약직 관리규정에는 사람이 없다. 인원수는 정원이 아닌 정수로, 인원 감소는 정수 삭감으로 표기돼 있다. 물건 세는 표현이다. 규정상 우리 명칭은 단순노무원, 현장인부, 단순 잡역 조무인부다. 우리는 막 대해도 된다고 취급받는 것 같다."(박춘규 민주연합노조 김제지부장)

"학교 급식조리종사원들은 '어이' 아니면 '아줌마'로 불린다. 예전 근로계약서상 명칭은 '일용 잡부'였다. 학교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업무를 상당부분 분담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보조'로 불린다. 관련법도 없다 보니 지자체별로 명칭이나 대우가 천차만별이다."(김영애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경기부지부장)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노동차별용어의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의 성토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차별적 용어 사용과 차별적 인식·처우가 연동돼 있으며, 이는 노동자 개인에 대한 모멸감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참여연대·한양대공익소수자 인권센터가 참여하고 있는 '노동차별용어 개선연구회'와 이인영·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관·주최했다.

비정규직은 부리는 사람?

김근주 한양대공익소수자 인권센터 전문연구원은 "한국 사회에서 뜻이 모호하거나 노동차별적인 용어가 법률·규범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에서 다수 사용되고 있으며, 노동자에게 법적·사회인식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 상당수 지자체가 조례나 규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를 인부·보조 같은 비하적·차별적 용어로 칭한다. 단순잡역보조업무·인부(88곳 시·군·구)나 단순노무·단순보조업무(44곳)로 표기한다. '부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사역 인원(1곳)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근주 전문연구원은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같은 용어를 '실무원' 같은 가치중립적 용어로 속히 대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근로시간면제심의제도·탄력적 근로시간제처럼 뜻이 어렵고 모호한 노동법 용어와 법원 판례에서 '노동 3권'이 아닌 '근로 3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연구원은 "법정용어의 경우 타당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논의 없이 모호한 용어들이 사용되면서 법 해석과 이해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노동자를 객체로 하는 '근로'라는 표현을 사용해 노동편향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정리해고' 용어에 감춰진 사용자 잘못

정리해고와 일반해고도 대표적 차별언어 사례로 지목됐다. 정리해고의 법률적 의미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다. 그런데 정리해고라고 표현하면서 "불필요한 노동자를 정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대법원이 1989년 정리해고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뒤 법률계에서도 노동자를 정리대상으로 객체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경영해고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일반해고는 법원이 구분하는 징계해고·경영상 해고 같은 해고기준 외에 저성과자 퇴출프로그램에 의해 별도의 해고규정을 설정하려는 것으로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규정을 회피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근주 연구원은 "노동분야 같이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극명히 대립하는 영역에서 쓰이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며 "법정용어와 판례상 용어에 대한 타당성 평가를 통해 차별용어를 개선하고 이를 사회 영역으로 확대하는 한편 사회적 노동차별 용어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