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이라며 호들갑이다. 여기서 말하는 독재자는 박정희(1917~1979)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박정희가 독재자가 아니어야 하는데, 문제는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사실이다.

독재자, 엄밀히 말해 독재 체제를 측정하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의 최소치(minimalist)를 기준으로 해서다. 선거를 통한 정당 간 경쟁이 존재하는가. 인권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법치(the rule of law)가 보장되는가 따위다. 독재 유형도 군부 독재와 민간-군부 독재, 일당 국가, 개인숭배 국가, 이들의 잡종 등으로 나뉜다.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해 행사하는 방식으론 권력 세습과 군사 쿠데타·헌정 독재·친위 쿠데타(self coup) 등이 거론된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은 5·16을 혁명으로 우기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게 혁명이지 민주주의를 허무는 게 혁명일 수 없다. 1972년 10월에는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 정지를 골자로 하는 비상조치를 통해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다. 이로써 선거를 통한 정당 간 경쟁은 사라졌고 사실상 일당 국가가 출현하게 됐다. 언론 자유는 무너졌으며, 법치주의는 법을 이용한 지배(the rule by law)로 대체됐다. 최소한의 민주주의, 즉 자유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부-관료가 지배하는 전형적인 독재 체제가 박정희 정권이었다.

여기에 개인숭배 흐름까지 등장해 박정희가 다녀간 마을에는 신라 진흥왕이나 북한 김일성 사례처럼 순수비가 세워졌다. 또한 관공서나 공공기관의 좋은 자리는 대통령 사진으로 도배됐다. 심지어 박정희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온 국민이 따라 불러야 했고, 공공기관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박정희 노래를 들으면서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이른 아침에 청소를 해야 했다. 유신헌법 체제는 헌정 독재였던 것이다. 측근들과 더불어 젊은 여자들을 불러 놓은 저녁 술자리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926~1980)의 권총에 최후를 맞은 박정희는 권력 세습을 뺀 모든 측면에서 독재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줬다. 자유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최소 기준에서 볼 때 박정희 정권(1961~1979)은 전형적인 독재 체제에 다름 아니었다.

독재자를 측정하는 지표도 존재한다. 예컨대 △개인 권력을 비정상적으로 남용하고 △입법부를 무시하고 행정부 수반이 입법권을 행사하려 하며 △입법부가 만든 법률이 아닌 행정부 수반이 만든 시행령(decree)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며 △법치(the rule of law)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 신격화 혹은 특정 가족에 대한 숭배를 조장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박정희는 물론이거니와 집권 3년차를 넘어가는 현직의 박근혜 대통령조차도 독재 혐의를 벗어나기 힘들다. 집회와 시위의 허가를 경찰로부터 받아야 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에 대항해 반대 시위를 벌였다고 검경이 앞장서 ‘소요죄’를 들먹이는 나라를 정상적인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 독재자의 딸을 글과 그림으로 '독재자의 딸'이라 표현했다고 경찰이 들이닥치고, 그 경찰이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의 딸'이라 표현하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고, 그 경찰이 독재자가 독재를 했다는 증거가 있냐는 식의 희한한 궤변을 늘어놓는 나라를 자유민주국가라 어찌 말할 수 있을까.

하기야 4·19 혁명으로 쟁취한 자유 민주주의를 파괴한 군사반란을 ‘혁명’이라 칭하고, 군사 쿠데타 주모자들을 혁명가라 우기는 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이기는 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고문은 중앙정보부의 취조실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었다. 내 어린 시절 시골 마을 지서 뒷간에서도 죄 없는 사람을 살인자로 둔갑시키기 위해 고문은 예사로 행해졌다. 사상의 자유는 그림의 떡이고 좌파 사상은커녕 지금은 중·고등학생도 읽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공산주의 서적으로 둔갑하는 그런 시절이 독재 체제가 아니라면, 뭐가 독재 체제란 말인가. 그런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독재자가 아니라면 누가 독재자란 말인가.

정보기관과 군부·경찰이 특정 후보를 지지할 목적으로 개입한 선거를 통해 지금의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후 국격은 날로 하락하고, 민주주의는 나빠지고 있다. 5공 독재를 청산한 자리에 3공 세력이 부활해 1987년 수립된 민주주의 체제를 공격하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게 점점 두려워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숨어서 읽는다면 왜 숨어서 모의를 꾸미냐고 검경이 덤벼드는 ‘조작’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모든 흐름의 핵심에는 구체적인 공포를 조장하고 때로는 사회 곳곳에 막연한 공포를 퍼뜨려 모든 국민을 굴종시키고 침묵시키려는 독재 세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공포의 확산과 확대재생산은 2016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을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의 딸'이라 말할 수 없는 독재 사회로 회귀시키고 있다. 공포에 맞서는 힘은 양심이 아니라 용기다. 2016년을 맞이하면서 독재 세력의 회기라는 시대상은 우리들에게 양심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용기를 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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