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9일 오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해 있는 조계사 관음전 앞에서 경찰의 경내 진입을 반대하며 농성하던 스님과 신도들을 끌어내고 있다. 정기훈 기자

경찰이 9일 오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한시적으로 보류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내일(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중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조계종과 한 위원장 사이에 어떤 결단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긴장감 감돈 조계사=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는 이날 하루 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의 경력 투입방침에 조계종은 종단 차원에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사전에 예고한 대로 영장집행을 추진했다.

조계종은 이날 오전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한 지 24일 만에 처음으로 종단 차원의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일감 스님은 “법 집행을 명분으로 경찰병력이 조계사를 진입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달라”며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경찰병력이 조계사에 투입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은 그러나 수사형사 100명과 기동대 7개 중대 등 600여명의 인력을 조계사 주변에 배치하고 검거작전 실행에 들어갔다. 이에 조계종 총무원 직원과 한국불교신도회·한국불교대학생신도회·한국청년신도회 소속 신도 200여명이 경력 투입에 반대하며 한 위원장이 있는 관음전 진입 통로를 차단했다. 법복 차림의 스님들도 불경을 외며 경력 투입에 반대했다.

당초 경찰은 오후 5시께 한 위원장 검거작전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시간이 임박할수록 관음전 주변 경력이 늘어났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있는 관음전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은 또 관음전 주변에 투신 대비용 매트리스를 설치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계종 최고 권위자인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승 스님은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라며 “더 이상의 갈등은 종단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내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자승 스님의 중재로 경찰이 13년 만에 종교단체에 들어와 노동조합 대표자를 체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위원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계종측은 한 위원장에게 자진출두하라고 거듭 권유해 왔다. 이런 설득은 자승 스님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10일 정오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력 남용 논란 확대되나=한편 경찰의 한 위원장 검거작전과 관련해 경력 남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위원장은 현재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나 노동자대회 등을 주최하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어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소요죄’는 현재 발부된 체포영장과는 무관하다. 올해 6월 법원은 한 위원장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 청구에 “집시법 위반과 교통방해 혐의는 체포나 구속을 해야 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체포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한상균 위원장은 개인의 지위에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조계사로 몰래 숨어든 범죄자가 아니다”며 “2천만 노동자의 대표로서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 혐의가 있다고 해도, 마치 사회적 범죄자인 듯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추후 조계사에 대한 경력 투입과 한 위원장 검거가 현실화하면 즉각적인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민주노총은 “2천만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중대 범죄자로 매도하는 정부는 민주적 질서와 소통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민주노총은 광기 어린 공안탄압과 정부·여당의 노동개악 관철을 저지하기 위해 16일 강력한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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