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의 모범으로 꼽는 네덜란드와 독일 모두 높은 고용률(낮은 실업률) 달성에는 성공했지만 안정성보다 유연성이 급속히 확대하면서 노동시장이 양극화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두 나라 노동시장 전문가들의 자기 반성이다.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과 독일 하르츠 개혁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노동시장 개혁은 높은 고용률 달성과 함께 유연성·안정성 간 균형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한국노동연구원은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 모차르트홀에서 해외 노동시장 전문가들을 초청해 노동시장 개혁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네덜란드, 2013년 양질의 일자리 창출 새 협약 체결

마르턴 쾨너(Maarten Keune)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노동관계학·고등노동연구소장)는 “1982년 노사정이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은 높은 실업률, 특히 청년실업률 해소와 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했다”며 “소득보다 일자리를 우선순위에 뒀고 임금 억제와 고용 재분배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협약이 체결됐다”고 설명했다.

또 90년대 말에는 유연안정성법(Dutch Flexibility and Security Act)을 제정해 계약직 사용을 보다 용이하게 만드는 동시에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사회보장 권리를 강화했다. 쾨너 교수는 “이러한 조치로 고용률이 70% 중반대로 상승한 것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그는 “일자리 창출 개혁이 반드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고용률은 높아졌지만 노동시장이 급속히 유연화하면서 2013년 기준 전체 노동자 절반(49.8%)이 비정규직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쾨너 교수는 "노사정은 협약을 체결하면서 유연고용 확대가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한 후 정규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0년 이후 고용률은 높아졌지만 전일제 종사자(정규직) 고용률이 감소하고 비정규직·파견과 질 낮은 유형의 새로운 고용관계가 등장해 고용 취약성이 높아졌다”며 “그 결과 안전하고 질 높은 일자리와 불안정하고 질 낮은 일자리로 노동시장이 이원화했고 청년층과 저학력자가 큰 피해를 받는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는 이에 2013년에 새로운 사회협약을 체결하고 2020년까지 양질의 일자리 확충에 매진하기로 노사정이 합의했다. 그는 “새 사회협약은 네덜란드가 달성하고자 했던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반성”이라며 “과도한 유연성을 규제하고 실업수당을 강화해 안정성을 높이려 시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낮은 실업률, 생산인구 감소·경제성장도 한몫

독일은 2002년 하르츠 개혁 이후 2005년 13%대였던 실업률이 지난해 7.6%까지 떨어졌다. 마티아스 크누트(Matthias Knuth) 뒤스부르크-에센대학 교수(사회학·일숙련직업훈련연구소장)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유럽 각국의 실업률이 치솟는 가운데서도 안정적인 실업률을 보였다는 것은 고무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크누트 교수는 독일 노동시장의 긍정적 변화를 단순히 하르츠 개혁에 따른 것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독일 실업률이 감소세로 전환한 2006년부터 생산가능인구(만 15~65세)도 함께 줄었고 독일 경제는 성장하면서 인구학적·경제적으로 실업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근로시간계좌제 같은 전통적 노동시간 유연성 제도가 해고(고용조정)를 줄여 고용안정성을 높였다는 것도 독일이 낮은 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는 “하르츠 개혁으로 사회안전망이 축소됐지만 이것이 독일 경제성장과 고용성장을 모두 설명해 주고 있지는 않다”며 “노동자들이 더 빨리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도록 촉진하기는 했지만 임금·노동조건·통근거리에서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했고 기존 노동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을 높여 시장 전반의 노동 재배치는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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