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법을 포함해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의 발걸음이 조급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오후 새누리당 지도부를 급하게 청와대로 불러 법안 처리를 요구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날 오전 극히 이례적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내 입법을 주장했다.

심지어 새누리당·노동부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불법파견 천국으로 이름난 안산·시흥스마트허브(옛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사업장을 방문해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자"는 어이없는 행보를 보였다.

뿌리산업 파견확대부터 여론몰이?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오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원유철 원내대표와 긴급회동을 갖고 노동개혁 입법안과 경제활성화법의 연내 국회 통과를 독촉했다. 앞서 이기권 장관과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같은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개혁 5대 입법이 연내에 반드시 완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 5대 법안의 정기국회 통과가 무산된 가운데 임시국회 통과를 위해 정부와 여당이 여론몰이에 나선 형국이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뿌리산업 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뿌리산업 파견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과 고영선 노동부 차관은 안산·시흥스마트허브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업체 삼신화학공업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정책위의장은 “뿌리산업이 청년 취업기피와 이직률 증가로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며 “뿌리사업 파견허용을 포함해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산·시흥스마트허브는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 불법파견이 만연한 곳으로 유명하다. 노동자들에게는 '불법파견 천국'으로 불린다.

민주노총과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올해 6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18.7%가 파견직이었는데,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 노동전문가들은 “제조업 10곳 중 9곳이 불법파견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여당은 "인력 미스매치 해소와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불법파견이 기승을 부리는 안산지역을 방문했는데, 난데없이 "파견 확대"를 주장했다. 해법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연구 결과도 외면한 정부 해법

안산지역 제조업체들이 불법위험을 무릅쓰고 파견근로를 사용하는 대상은 단순 기능인력이다. 사용자들은 단순 기능인력을 파견 같은 비정규직으로 단기간 고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전문·고급인력이다.

지역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고급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어렵게 채용하더라도 숙련인력을 대기업에 빼앗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센터장 박재철)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안산·시흥스마트허브 중소기업 구인·구직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실린 중소기업 사업주들의 얘기를 보자.

“3개월, 5개월 이런 식으로 투자를 했는데도 나중에 어느 정도 배우면 가 버립니다. 그러니 젊은 애들 데리고 와서 해 봐야 필요도 없는 거고, 이게 악순환이 되다 보니까 경력 5년 이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요.”

“우리 임금이 공단 전체로 보면 상위 5% 안에 들어갈 거예요. 대기업 대비 70~80%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도 인력이 없어요. 취업하려고 온 친구들이 그만한 임금에 걸맞은 기능을 못 갖고 있다니까요.”

박재철 센터장은 “영세업체들은 단순인력은 파견을 통해 얼마든지 언제나 구할 수 있지만 기술·경력직 채용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공공고용서비스를 통한 인력제공과 중소기업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이 엉뚱한 대책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노동부가 연구기관 아이알씨에 의뢰해 2013년 12월 발표한 ‘안산시흥지역 산업 및 노동시장 구조와 근로조건 실태조사’도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이알씨는 보고서에서 “불법파견에 대한 처분을 강력하게 추진하면 이 지역의 사업체는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을 사용하거나 사업체 규모가 감소할 것”이라며 파견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커지는 상황은 우수한 구직자를 유치할 수 없는 열악한 근로환경을 만들게 된다”며 “궁극적으로 인력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와 경제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이 자신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의 일부분만 발췌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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