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와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 국가폭력 규탄 국민대회 및 대행진'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마무리됐다. 이에 앞서 11월14일 이후 지난 20여일 동안 한국의 공론은 폭력 문제로 시끄러웠다.

집회와 시위가 있던 토요일자에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 "비폭력 약속 지킬까 … 오늘 모두가 지켜본다"고 협박성 글을 썼다. <중앙일보>는 "오늘 복면 쓰고 평화시위 하겠다는 범대위"라고 제목을 달았다. 사설에서는 "또 폭력 등장하면 집회 자유 흔들릴 것"이라는 제목으로 압박했다.

이런 폭력 논란 속에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들이 왜 민중총궐기대회를 열려고 하는지, 국민이 왜 국가폭력 규탄대회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이것은 여론주도세력이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노동개악 5법 추진이나 파쇼적인 국가폭력 일상화는 덮어지고 노동자와 민중이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세력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됐다. 그러면서 쟁점은 민주노총이 폭력을 또 행사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1차 민중총궐기대회 때와 같은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데로 총의가 모아졌다.

저간의 과정은 한국 정치지형과 이데올로기 지형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한국 국가와 시민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도 진보주의도 없고 오로지 수구와 보수만 존재한다. 도로를 점거하고, 복면을 쓰고, 파이프를 들고, 차벽을 친 경찰차를 밧줄로 당기면, 또 경찰차에 알루미늄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가서 태극기를 흔들고 고함을 외치면 폭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그 같은 폭력시위는 단호하게 금지돼야 하고 엄하게 처벌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살수차로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사격해 칠순 나이의 농민을 사경에 이르게 한 것은 폭력이 아니고 적법한 공권력 행사이므로 처벌은커녕 국가가 사과할 일조차 아닌 게 된다.

이 나라에는 이런 초등학생 수준의 파쇼적 여론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제1야당도 편승해 노동개악법을 임시국회에서 합의해 처리하기로 여당과 약속했다. 당 대표의 행보는 정부의 살인폭력 규탄으로부터 평화집회 성사 노력으로 돌아섰다. 천민자본가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보니 정치와 이데올로기도 그런 천민자본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정치 지도층들은 여·야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폭력이 무엇인지, 공권력은 무엇인지, 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공부해야 할 것 같다.

폭력은 일반적으로 평화에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평화는 무엇인가. 전쟁으로 대표되는 물리적 갈등과 증오로 대표되는 심리적 갈등이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 갈등은 왜 생겨나는가. 사람들이 가치 추구와 이해관계 추구 과정에서 서로 의존하는 동시에 서로 충돌해 대립과 적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립과 적대는 어떤 경우에 존재하게 되는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위계적인 지배와 착취가 존재하거나 우열 구분과 차별이 존재할 때일 것이다.

요컨대 폭력은 사회적 관계가 비평화적일 때 발생한다. 전태일 동지는 수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아는 나의 직장, 나의 행위는 분명히 인간본질을 해치는 하나의 비평화적, 비인간적 행위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비인간적인 관계로 상대함을 말한다."

이처럼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해 있고, 어느 한 부류의 인간들이 다른 부류의 인간들을 지배하거나 차별하고, 착취하거나 수탈할 때 평화가 파괴된다. 그렇게 평화를 파괴하는 비평화적, 비인간적 행위와 관계 자체가 곧 폭력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평화와 폭력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과연 평화로운 상태인가. 이 자본주의 사회가, 특히 이 천민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과연 평화로운 사회인가. 오히려 이 사회의 일상적인 상태가 바로 야만적인 계급지배·착취 상태이고, 폭력적인 상태 아닌가. 그리고 국가는 바로 이 폭력적인 상태를 창출하고,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장치로서의 폭력독점기구가 아닌가.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반대하는 노동악법 제정이, 노점상 철거가, 밥쌀 수입개방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바로 국가폭력이다. 경찰이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해 사경을 헤매게 만들었든 아니든 국가는 이미 민중에게 국가폭력을 행사해 왔고 또 행사하고 있었다. 이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에서 살아가는 민중에게는 평화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으로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지배계급의 사회적·정치적 폭력에 맞서는 민중의 폭력은 정당하지 못한가. 그래서 도덕적·법적으로 엄하게 다스려야만 하는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일찍이 벤야민·데리다·파농 같은 사람들이 저항적 폭력의 정당성을 제기해 왔다. 다만 저항적 폭력이 인간해방이라는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폭력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화돼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가 나아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1차 민중총궐기의 최소한의 제한적 폭력은 정당했다. 노동악법 제정 그 자체가 폭력이기 때문에!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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