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을 떠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아서일까. 지난 1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는 사뭇 달랐다. 머리를 숙이고, 수첩에 메모하는 국무위원은 없었다. 때 아닌 논쟁이 일었다. 그런데 토론은 아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국무위원들의 날선 비판만 쏟아졌다. 쟁점은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이었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사회보장법상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시 정부와 협의되지 않은 사업’의 경우 그 만큼 지자체의 교부세를 감액하는 것이다. 표적은 바로 서울시의 ‘청년수당’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서울시의 청년수당에 대해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범죄”로 규정하며 날을 세웠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과 중복 된다”고 지적했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가결된 시행령 개정안은 문제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은 중앙정부와의 협의대상에 해당된다는 게 국무위원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반면 박원순 시장은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고, 지방정부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규제일변도로 접근 하고 있다”고 맞섰다.

도대체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뭐 길래. 수첩에 메모하느라 숙연했던 국무회의 분위기가 바뀌었을까.

서울시에 따르면 청년활동 지원사업은 이른바 ‘니트(NEET)청년’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다. 니트청년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취업도 하지 않은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이들은 직업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은 청년층이다. 서울시는 사회진입이 지체되거나 실패한 청년들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이 같은 지원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서울에 거주하는 19~29세 중위소득 60% 이하 청년 가운데 정기 소득이 없는 미취업자다. 여기에 해당되는 이들은 약 50만2천명에 이른다. 서울시는 공공·사회활동 혹은 자기주도적 활동계획서를 제출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심사해 지원한다. 내년에 약 3천명의 청년들이 최소 2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 월 50만원씩 지원 받는다. 서울시는 내년 1월 청년활동 지원사업 세부 운영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다.

사회 밖 청년에게 사회참여활동을 유도하고,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울시의 사업은 낯선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노사가 갹출한 실업보험과 국가가 지원하는 실업부조로 실업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실직을 당해 구직활동을 하는 이들에겐 실업급여,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미취업자에겐 실업부조의 혜택이 부여된다. 반면 우리의 경우 구직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만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있다. 그것도 비자발적 실업자에게만 국한된다. 취업을 하려는 의지마저 꺾인 니트청년은 노동시장에서도 제외된 이들이다. 서울시가 마련한 청년활동 지원사업은 이런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대책인 셈이다.

물론 중앙정부는 ‘중복사업’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지적은 일면 타당한 면도 없지 않다.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또는 보건복지부의 복지지원제도와 겹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은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이 취업상담과 직업훈련을 받을 경우 수당을 지원하며, 취업을 하면 성공수당도 지원한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구직활동이나 직업훈련에 참여하지 않은 청년도 지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부와 서울시의 사업은 겹치지 않는다. 서울시 스스로 사회 밖 청년에 대한 지원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또 니트청년을 겨냥한 지원사업이 없는 복지부의 복지지원제도와도 중복되지 않는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이제 실업부조를 도입할 때라고 주장해 왔다. 2013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노사정은 ‘고용유인형 사회안전망 합의문’을 채택했는데, 여기에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이 포함됐다. 서울시의 청년활동 지원사업은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때문에 서울시 청년활동 지원사업은 실업부조 도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중앙정부가 제지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까지 개정해 지방정부 사업에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청년활동 지원사업의 얼개만 밝혔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그 윤곽이 드러난 후 문제를 지적하면 될 일이다. 국무위원들이 험한 말까지 하면서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볼썽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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