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주택가 한가운데서 고물상이 영업 중이다. 악취와 소음 그리고 분진 때문에 살 수가 없다. 고물상과 담을 두고 있는 집 중에는 세가 나가지 않아 비어 있는 곳도 있다. 법에는 고물상은 주거지역에 위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민원을 내도 달라지는 게 없다. 더는 참을 수 없으니 시가 책임지고 해결하라.”

주택가에 웬 고물상?

6월 하순의 한낮은 인내심을 시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잠깐인데 뭘’ 하며 차에서 내렸던 좀 전의 결단(?)이 금세 후회로 바뀔 정도로 무더위가 대단했다. 주위의 시선만 아니면 당장에라도 에어컨 빵빵한 자동차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연신 땀을 훔쳐 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린내 비슷한 악취가 났다. 썩은 냄새 같기도 하고, 아무튼 불쾌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3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고물상 하나를 발견했다. 교행으로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연립주택들이 즐비하고, 그 사이사이로 구멍가게와 떡집 그리고 분식집이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주택가에 미운 오리 새끼처럼 고물상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고물상 입구에 들어섰지만 찌푸려진 눈살은 좀체 펴지지 않았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통보했는데도 자리에 없는 걸 보니 부러 피했나 보다 싶었다. 다행히도 동행한 주민센터(동사무소?) 공무원이 저간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전말은 이랬다.

“이 집 주인은 여기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과거에도 고물상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때도 온갖 민원을 유발해서 거의 1년을 씨름한 끝에 고물상을 폐쇄했는데, 얼마 전 이곳에 다시 고물상을 열었습니다. 저 사람은 거의 ‘배 째라’ 수준이라 앞으로 또 얼마나 애를 먹일지 솔직히 걱정입니다.”

공무원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해 “그냥 단속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글쎄 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인데요, 담당 부서 말로는 단속 규정이 좀 애매하다고 합니다. 청소과는 오염 기준만 맞추면 단속할 수 없다고 하고, 건축과는 위법 사항이 있으면 이행강제금이나 벌금을 물릴 뿐이지 이전하라고까지는 못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듣던 대로였다. 이미 핑퐁이 시작된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단속 권한은 본청 주무 과(課)에 있으니 민원인에게 욕을 들어도 주민센터가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결국, 청소과 아니면 건축과가 책임져야 할 문제로 보였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겨?

고물상은 1961년에 만들어져 93년에 폐지된 고물영업법에서 나온 말이다. 이 법에 따르면 ‘고물’은 오래된 물건이고, ‘고물상’은 이를 사고파는 사람이다. 그리고 고물상을 하려면 경찰서장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오래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의 의미로 불리던 고물상은 잠시 ‘쓰레기 따위를 수집하는 사람’으로의 추락(?)을 경험한 끝에 지금은 ‘폐기물 수집 업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고물상을 규정하고 있는 건축법(시행령 별표1)이 ‘분뇨 및 쓰레기 시설’에서 ‘자원순환 관련 시설’로 용어를 변경한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고물상이라는 실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데도 그 이름만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자신을 규정했던 법(고물영업법)은 사라졌는데 새로운 법(폐기물관리법)은 더는 고물상을 고물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나마 건축법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제부터 고물상의 모법은 폐기물관리법이다. 고물상을 하려거든 폐기물관리법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폐기물관리법이 고물상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물론 모든 고물상에게 이런 은전을 베푼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고물상은 더는 허가나 신고 따위를 받지 않아도 사업을 할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됐다. 폐기물관리법 제46조에 따르면 '2천제곱미터 미만 규모'의 영업장은 신고 없이도 폐지·고철·폐포장재 등과 같은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앞의 영세한 고물상(폐기물 수집 업체)은 “보관 장소에서 악취가 나거나, 쥐·모기·파리 등 해충이 생겨” 시장으로부터 시정명령 등을 받았다 하더라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폐기물 처리 방법 변경, 폐기물의 처리 또는 반입 정지 등”과 같은 조치를 받거나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으면 그뿐이지 그 누구도 고물상을 옮기라 마라까지는 명령할 수 없게 됐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폐기물관리법이 그렇다는 얘기지 다른 법률도 고물상에게 ‘이전’을 명령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들 난감하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그럼, 건축법도 아니고 폐기물관리법은 더더욱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규제(이전)의 근거를 찾는단 말인가.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공무원은 무슨 근거로 주택가에 고물상을 설치할 수 없다고 한 거지?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급기야는 그 공무원조차 법률 규정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진짜로 진로가 막혀 버렸다.

모르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건축이나 도시계획 관련된 문제가 생길 때면 항상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다. 도시 정책의 기본법처럼 도시와 관련된 기본 내용들이 잘 정리돼 있어 간혹 예상치 않은 선물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바로 그 법(국토법이라 부르자!)이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국토법 제36조는 시장으로 하여금 “도시지역에서 거주의 안녕과 건전한 생활환경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지역을 ‘주거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는데(주거지역은 다시 전용주거지역·일반주거지역·준주거지역 등으로 세분화되고, 일반주거지역 중 “저층주택을 중심으로 편리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역”을 다시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 기준에 의할 경우 민원인들이 거주하고 있는(고물상이 위치한) 지역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해당했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 말이다. 국토법 제76조와 시행령 제71조는 “제1종 일반주거지역 안에서는 고물상을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물상을 제1종 일반주거지역 내에 설치하는 것은 국토법 제76조 위반이 되기 때문에 같은 법 제133조에 의거해 시는 “공작물 등의 이전, 그 밖의 필요한 처분을 하거나 조치를 명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명약관화한 단속 근거를 찾아냈음에도 해결 전망은 불투명해 보였다. 누구에게 방울을 달 것인가가 여전히 숙제였기 때문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모두 발을 빼려는 눈치가 역력했다. 특히 청소과는 폐기물관리법만 연신 부르짖으며 신고 대상이 아닌데 옮기라 마라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게다가 환경오염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데야 달리 반박할 논거가 부족했다. 일단 권고 대상에서 제외했다. 난색을 표하기는 건축과도 마찬가지였다. 건축법상 불법 행위가 없다는 설명과 함께 무게를 재는 계근대 설치도 가능하고 물건의 적치도 문제가 없다는데, 이 또한 도리가 없었다. 여기도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차 떼고 포 떼니 도시정책과만 남았다. 국토법이라는 든든한 우군도 확보했으니 방울 달기에는 최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곳의 저항도 만만하지 않았다. 예의 그 ‘고물상’ 논리를 펼치면서 말이다. “고물상이라는 용어는 고물영업법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건축법 시행령은 자원순환시설의 하나로서 여전히 고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토법에 따라 고물상이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맞지만, 폐지 등을 수집하는 시설이 곧 고물상이라는 규정이 없는 한 지금의 시설을 이전하라 요구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고물상이 고물상이라는’ 규정이 없어 국토법 적용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환장할 일이었다. “아무리 민원을 넣어도 소용이 없다”라는 시민들의 불만이 이해가 됐다. 호민관한테도 저러니 시민들이야 오죽하겠는가도 싶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고 논리는 논리로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주거지역 내 고물상 설치는 명백히 법률 위반입니다. 국토법에 따르면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는 고물상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는 다수인 민원에 대한 지난 회신에서, ‘계근대 설치 및 물건 적치가 가능하다’고만 답변할 뿐 ‘고물상의 주거지역 내 설치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최근 인터넷 민원 답변을 통해서는 ‘고물상이라는 용어가 폐지됐기 때문에 고물상을 특정할 수 없어(법령체계 미비) 국토법에 따른 처분 규정 적용에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일한 민원에 대해 ‘행정처분이 가능하다’고 한 국토부의 유권해석과 ‘고발 조치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 강력한 행정처분에 나서겠다’고 한 타 지자체 사례 등과 배치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폐기물관리법 위반(보관 의무 위반)에 따른 단속도 가능하다는 것이 호민관의 판단입니다. ‘악취와 해충으로 인한 주거 환경의 악화’가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민원 해소의 출발점으로서뿐 아니라 민원의 확장을 차단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고물상을 둘러싼 현실적 여건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주거지역에 위치한 고물상의 수도 엄청나고 고물상이 없어질 경우 다수의 노인 수집상의 생계가 위협받는 등 여러 부작용도 예상되기 때문에 고물상 이전은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주거지역에 위치한 모든 고물상을 대상으로 그 이전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계도를 통해 우선 환경오염을 줄여 이전 요구를 차단하는 데에 행정 역량을 집중하되 계도를 따르지 않는 고물상에 대해서는 물리적 강제력(이행강제금 부과 및 고발 조치)을 동원하는 이른바 ‘선별적 대응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권 보호’는 최우선적 과제여야 합니다. 호민관은 시민의 권익을 보호합니다. 다수 시민의 ‘쾌적한 곳에서 살 권리’와 고물상의 ‘영업권’ 모두 보호 대상입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주거권’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영업권’을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주거권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되 부작용은 다른 정책으로 줄인다’는 원칙 아래 정책의 내용과 시점을 미시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본 민원 대상인 ○○동 소재 고물상은 국토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입지’ 때문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오염(악취 및 해충 발생)시키기 때문에라도 적법한 장소로 이전돼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동 고물상 주인은 인근에서 오랜 시간 불법적으로 고물상을 영위하면서 이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시의 행정력 낭비를 초래했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도 (전)고물상과 관련한 불법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 ○○동 담당 공무원의 전언입니다. 본 건 ‘주거지역 내 고물상 설치’의 고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른바 ‘정상참작’을 적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국토법 관련 조항에 의거해 ① 고물상에게 적법한 곳으로의 이전을 명령하고 ② 정해진 기간 내에 이전하지 않을 경우 ‘고발 조치 및 이행강제금 부과’와 같은 행정처분을 조치할 것을 주문합니다. 아울러 도시정책과를 중심으로 청소행정과·건축과·환경정책과 등이 참여하는 가칭 ‘고물상 통합 단속반’을 만들고 단속과 관련한 법 규정을 동시에 적용하는 등 민원 해소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할 것을 주문합니다.”

사실 나의 고민은 딴 데 있었다. 권고문에서도 밝혔지만 폐지 줍는 노인들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오히려 더 큰 문제였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해법은 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뭐라 해도 고물상이 노인들의 생계를 책임지고(부분이든 전부든) 있는 것만은 분명했으니, 고물상 폐쇄가 가져올 노인들의 빈곤을 해결할 방도가 없는 한 고물상 이전을 그냥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악취와 분진 속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현실적 고통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결국 원칙을 선택했다. 폐지 노인의 문제는 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기고 당장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 고민들을 담아 작성한 것이 앞의 권고문이다. 권고문 작성에 들인 나의 노고를 인정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고민을 이해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바뀔 것 같지 않던 주무 부서의 입장이 극적으로 선회했다.

“민원 대상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여 시정명령 등 관련 법령에 따라 행정처분을 진행할 것이며, 앞으로도 고물상에 대해서는 관련 부서와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민원 해소에 나서겠다”라는 취지의 답변이 전달된 것이다. 민원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실로 6개월 만에 이뤄진 쾌거(?)였다. 비로소 오랜 싸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물상 관련 법·제도]
제1종 일반주거지역 안에서는 건축법 시행령 별표1 제22호 나목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물상은 위치할 수 없다.(국토법 제76조1항 및 동법 시행령 제71조3호 및 별표4)

2천제곱미터 미만 규모의 영업장에서 폐기물(폐지·고철·폐포장재 등)을 처리하는 자는 신고 없이도 사업이 가능하다.(폐기물관리법 제46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66조)

“폐기물을 처리하려는 자는 보관 장소에서 악취가 나거나, 쥐·모기·파리 등 해충이 생기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만약 위 기준과 방법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당해 지자체장은 ‘폐기물을 처리한 자’를 상대로 ‘기간을 정하여’ ‘폐기물 처리방법 변경, 폐기물의 처리 또는 반입 정지 등’과 같은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동법 제13조 및 시행령 제7조, 시행규칙 제14조와 별표5)

위와 같은 시장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동법 제66조 및 6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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