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12월5일이 2차 민중총궐기이다. 정부는 이날 집회에 대해 금지통고를 하고 검거 위주의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이 정부는 스스로를 ‘정복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듯이 자신들은 빼앗긴 권력을 되찾은 ‘정복자’이며, 저항하는 이들은 ‘적군’이기에 그들을 억압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복면을 쓴 시위대를 IS(이슬람국가)에 비유할 수 있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도 무시하는 것 같다.

‘민중총궐기’라는 하나의 집회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노동자들은 식민지 국민이었다. 정부는 청년일자리가 없는 것도 노동자 탓이고 소득 3만달러에 이르지 못한 것도 노동자 탓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경찰과 검찰, 용역깡패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는 2천만 노동자들의 권리가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에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게다가 정부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의 더 모욕적인 해고, 비정규직 확산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민중총궐기를 열심히 조직했다. 월소득 200만원 미만 노동자가 절반을 넘어서고, 비정규직도 절반이 넘으며, 멕시코를 제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에 지쳐 버린 노동자들이, 더 많이 모여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날 자신들을 막는 차벽을 향해 그동안의 고통과 분노를 쏟아 냈다. 정부는 그것을 일컬어 ‘폭력’이라고 한다. 여기에 입을 맞추며 ‘폭력은 안 된다’는 이들도 쏟아진다. 이제 12월5일에 열리는 민중총궐기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 집회가 폭력집회일지 평화집회일지만 논란이 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폭력인가. 노동자에게 잘못이 없어도 기업의 회계조작으로 인한 정리해고를 정당화해 주는 법,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밖에 안 주고 함부로 내쫓는 구조,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전광판과 송전탑에 올라가 외쳐야 하는 현실, 이것이 폭력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폭력인가.

노동법 개악으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데, 그것에 대해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 어떻게 폭력인가. 지금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집회 때의 ‘차벽’과 최루액이 아니라 ‘비정규직’ 혹은 ‘노동시장 구조개악’ 자체다. 이 거대한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노동자들은 "죽을 수 없다"고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이런 폭력을 행사했던 정부와 기업, 그에 장단을 맞춰 온 야당, 외부에서 논평만 하던 이들이 외치는 ‘평화’의 합창은 참으로 역겹다. 이들은 그동안 ‘평화적’인 노동자들의 요구에 한 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은 법에서 인정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이행하라며 200일 가까이 광고탑에서 농성하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법은 나쁘다고 말하기 위해 한겨울 시린 바닥 위에서 오체투지를 하면서 몸을 낮췄던 기륭전자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다.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이 망했다고 거짓말을 한 김무성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45일간 단식을 한 늙은 노동자가 쓰러진 콜트·콜텍이 있다. 이 고통스럽고 절박하고 평화로운 목소리에 도대체 누가 귀를 기울였는가.

12월5일 ‘평화집회’를 운운하는 정부와 야당에게 묻는다. 논평가들에게 묻는다. 12월5일 폴리스라인을 따라 집회를 잘 마치면 정부는 노동법 개악을 멈출 것인가. 야당은 책임지고 노동법 개악을 막을 것인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자신의 불법을 사죄하며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할 것인가. 쌍용차는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킬 것인가. 김무성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사과할 것인가. 아무도 그런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묻는다. 정부와 기업의 이 거대한 폭력은 도대체 어떻게 멈출 것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평화집회인가 폭력집회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점령자처럼 행동하는 정권의 폭주, 노동자의 삶과 미래를 빼앗는 노동법 개악을 멈출 수 있는가다. 그런 점에서 함께 투쟁했던 이들이나 연대를 하는 이들이 진정을 담아 말하는 ‘평화집회’ 제안을 배척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분노에 잠식당하지 말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자’는 제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쟁하는 이들에게 더 절박한 것은 그 투쟁 방식이 아니라 이미 자행돼 왔던 폭력에 위축되지 않는 정신이며, 이 싸움에 2천만 노동자들의 생존이 달려 있다는 책임감, 그리고 꼭 이기겠다는 의지다. 그 의지를 12월5일 2차 민중총궐기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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