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안산시가 기초단체에서는 처음으로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 제정에 나선다. 전국 자자체로는 서울시의 ‘근로자 권리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에 이어 두 번째다.

안산시는 지난 1일 저녁 안산 단원구 안산시근로자종합복지관 대강당에서 '안산시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 제정 공청회'를 열고 조례안을 공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제종길 안산시장과 김광호 한국노총 안산지부 의장·김영호 민주노총 안산지부장·윤석진 새누리당 안산시의원·주미희 새정치민주연합 안산시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퇴근한 노동자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노동기본권 침해 심각

안산시가 노동인권 조례를 추진하는 것은 제종길 시장이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인권증진조례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데 따른 것이다. 안산·시흥스마트허브(옛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조례 제정의 배경이 됐다.

안산시는 올해 7월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동단체 인사 6명·노동전문가 3명·상공인 1명·시의원 2명·공무원 2명 등 14명이 참여하는 노동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박형근 신안산대 산업경영과 교수)를 꾸렸다. 자문위는 5차례의 자문회의를 거쳐 조례안을 마련했다.<인터뷰 참조>

박형근 자문위원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 박재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4~9월 안산시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 30인 미만 사업체가 96.7%나 되는 등 영세사업체가 밀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월평균 임금은 전국 평균보다 적고 근무시간은 길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기본권이 준수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연차수당 지급은 34.2%, 초과근로수당 지급은 40.8%, 근로계약서 작성은 50.6%에 그쳤다.

안산·시흥스마트허브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박 센터장은 “전국 파견노동의 16%에 해당하는 3만여명이 안산·시흥스마트허브에서 일하고 있고 대다수가 제조업에 금지된 불법파견”이라며 “대기업에 종속된 최하위 산업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증가·위험한 작업환경·1% 노조 가입률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동인권지킴이·노동인권보호위원회 도입” 주문

안산시가 마련한 노동인권 조례안은 △노동인권 보호·증진 노력 △일과 가정의 양립 △취약계층 노동인권 보호를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시장은 5년마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한다. 노동정책 기본계획에는 노동정책 기본방향·노동교육·시민 의견수렴·근로실태조사를 포함해야 한다.

노동인권 침해가 발생하면 권리구제에 필요한 법률상담을 지원하고 구제절차 안내한다.

취약계층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 차별해소 노력과 함께 노동인권지킴이 제도를 도입한 것도 눈에 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인권지킴이를 통해 근로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노동인권보호위원회도 설치한다. 위원회는 노동정책 기본계획 수립에 대한 심의·자문를 비롯해 안산시가 노동인권 조례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강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노사정·시민단체·시의원·비정규직·여성 등 15명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2년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시 조례(근로자 권리 보호·증진)와 비교할 때 안산시(노동인권 보호·증진)는 ‘노동인권’이란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보편적인 인권향유 차원에서 노동문제를 포괄적으로 담았다”고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특히 △노동시간단축과 일·가정 양립 명시 △취약계층 노동자 차별해소·생활안정 △법률상담 지원 등 편의 제공 △노동인권보호위원회에 비정규직·여성 포함 등은 서울시 조례와 비교할 때 차별적이라고 설명했다.

“산재사망 심각, 조례안에 대책 반영해야”

이날 공청회에서는 조례안에서 산업재해와 노동건강권 부분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도시인 만큼 조례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용국 한국노총 안산지부 사무처장은 "지난해 고용노동부 산재통계에 따르면 안산시 산재사망자만 30명이나 된다"며 "중소·영세 사업장이 밀집한 스마트허브에서 산재예방교육·산업안전감독관이 부족한 현실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와 지자체가 협력해서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노동인권 조례에 담자”고 제안했다.

김형환 민주노총 안산지부 부지부장은 “안산시 산재사망 문제는 숫자를 넘어 산재신고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노동부 안산지청 근로감독관 숫자가 절대 부족해 업무에 한계가 많은 만큼 증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충 한양대 교수(경제학부)는 “노동인권 조례에서 우선순위는 근로기준법 준수·산재예방·노조가입처럼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내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종길 시장은 “노동자 도시 안산의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여겨 조례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며 “앞으로 노사정 협력을 바탕으로 실천력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안산시는 내년 2월께 안산시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하고 4월 통과를 목표로 한다는 방침이다.
 

▲ 연윤정 기자

안산시가 기초단체 중에서는 최초로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정책자문위원회의 뒷받침이 컸다. 이번 조례안도 안산시가 주도하지 않고 자문위가 마련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일 오후 공청회가 열린 안산시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형근(47·사진) 신안산대 산업경영과 교수를 만났다.

- 노동인권 조례 제정을 추진한 이유는.

“안산·시흥스마트허브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으니까 안산시내 편의점 같은 도시 전반에서도 법을 지키지 않는다. 뿌리가 깊다. 최소한 근기법이 지켜지고 노동인권이 보호되는 속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조례안의 핵심 내용을 설명한다면.

“노동인권지킴이 도입과 노동인권보호위원회 상설화가 핵심이다. 기본적인 근기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속에서 시민의식을 높이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노동인권지킴이 제도를 조례에 담았다. 노동인권보호위는 노동인권 조례를 사실상 강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노동자 도시 안산에서 시장이 노동 관련 플랜을 갖고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 노동정책자문위가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역량이 모인 모범사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안산시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양대 노총과 사용자단체·전문가·노동부·안산시·시의원이 함께 조례안을 만들었다. 근기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최소한의 인권이 지켜지는 도시를 만들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 노동인권 조례가 어떤 성과를 낼 것으로 보나.

“노동부나 산업통상자원부 같은 중앙정부와 경기도·안산시가 협력해서 안산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자금을 만들고 실질적인 실천을 하는 데까지 확산되기를 바란다.

안산지역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한계기업이 많이 들어온다. 그러면서 노동환경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미국 위스콘신 사례처럼 노사정이 협력해 기술교육을 통해 양질의 근로자를 육성하면 양질의 기업을 지역에 유치할 수 있다. 도시경쟁력도 생길 것이다. 안산시가 세월호 참사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