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정치적 아들’은 누구인가. 그의 ‘정치적 계승자’는 누구인가. 노무현이다. 김영삼은 자유 민주주의의 투사로 죽었고, 정치적 계승자는 노무현이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적극적 의미로 그가 이승만의 민간 독재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독재에 맞서 정치적 자유 쟁취를 위해 싸웠다는 점이다. 둘째, 소극적 의미로 그의 민주주의는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 민주주의로 확대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자·민중 민주주의는 북한식 ‘인민 민주주의’ 독재가 아니다. 민중 민주주의는 노동자가 공장과 사무실에서, 농민이 논밭에서, 서민이 자기가 생계를 꾸려 가는 삶터에서 권리를 지키고 이익을 개선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한다. 또한 이러한 기본권을 침해받을 때 자유롭게 저항할 수 있는 체제다. 이 점에서 지금의 북한 체제는 민중 민주주의와 관계없다. 오히려 일터와 삶터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한다는 점에서 남한의 민간·군사 독재와 궤를 같이한다.

민중 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는 경제적 민주주의·산업적 민주주의·사회적 민주주의·문화적 민주주의·교육적 민주주의·종교적 민주주의·정신적 민주주의·가정의 민주주의·세대 민주주의·남녀 민주주의 등을 자기 내용으로 한다. 법치주의(the rule of law), 정치와 종교의 분리, 세속주의 정치, 자연과 생명권 존중, 도시와 농촌의 균형 발전, 산업과 농업의 조화를 포괄하는 전체적(holistic)이고 적극적인(active) 개념이기도 하다.

민중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와 대립하거나 대치하는 게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발전시킨 체제다. 1987년 이후 한국이 경험해 왔듯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중산층을 비롯한 엘리트만이 자유와 민주를 누리는 법을 이용한 지배(the rule by law)라는 한계와 문제를 보이는 체제라면, 민중 민주주의란 정치권력과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한 피지배층인 민중 개개인이 정치적으로 공평한 지위를 차지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대접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일터에서) 자기 권리와 이익을 위해 자유롭게 결사하고 교섭함으로써 착취·폭력·차별을 당하지 않으며, 정신적으로 공포를 느끼지 않고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한다.

이는 형식적인 법치주의를 실질적인 법치주의, 즉 법 앞의 평등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 민주주의(social democracy)라 통칭되는 서유럽의 민주주의는 지배층 중심의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는 민중 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로 확대 발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들 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는 보수우익과 동의어다. 자유당(liberal party)은 보수당으로 간주된다. 역사적으로 중산층을 포함한 엘리트 민주주의로 기능해 온 자유 민주주의의 ‘자유’와 ‘민주’를 피지배층, 즉 민중(people)에게 확대한 민주주의가 민중 민주주의다.

현 시기 한국 민주주의 문제점은 자유 민주주의가 충분히 발현하지 못한 데서 연유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첫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반쪽은 군부독재였던 노태우 정권(1988~1992년)이었다. 5공 군부독재 세력과 자유민주 세력의 동거 정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을 토대로 한 김영삼 정권(1993~1997년)은 자유민주 세력이 주도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했다. 역시 군부독재(3공) 세력과 자유민주 세력의 동거정부로 출범했던 김대중 정권(1998~2002년)도 자유 민주적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 취약하고 혼란스러운 자유민주 세력만의 정부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2003~2007년)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민주적 과제의 완수는 정치적으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사회경제적으론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노동기본권 실현을 포함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87년 이후 민주화 28년,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을 거쳤지만 자유민주적 과제는 달성되지 못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이명박 정권(2008~2012년)의 우익화 혼란기를 거쳐 박근혜 정권에 접어들면서 극우·수구 세력의 준동과 군부독재 세력의 귀환을 목도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은 5공 독재의 핵심을 감옥에 보냈지만 그 잔재를 일소하지 못했다. 3공 독재의 잔당들과 연대해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권도 군부독재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어설픈 화해를 시도했다. 노무현 정권은 박근혜에게 국무총리를 주는 식으로 3공과 5공 세력과 대연정을 꿈꿨다.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자유민주 세력이 자신의 역사적 과제를 망각하고 어설프게 ‘진보’ 운운하는 동안 군부독재(파시즘) 세력은 ‘자유민주’ 세력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스스로가 ‘진보’ 야당이 아니라 ‘보수’ 야당임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보수야당의 임무는 ‘진보’ 운운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물론 이 과제는 보수야당 홀로 성취할 수 없다. 제국주의와 독재의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거쳐 발전해 온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안착은 지난한 과제다. 노동자 정당이 주도하는 민중 민주주의의 성장을 전제한다. 작금의 정세는 엄혹하며, 보수야당은 물론 민중 진영에게 또다시 자유민주적 과제 완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 민주주의는 ‘보수’에서 군부독재 세력을 도려내고 ‘자유주의’ 가면을 쓴 극우 파시스트들을 청산할 때 완성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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