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매출액 세계 4위인 SK하이닉스 생산직 노동자들의 암 발병률이 일반 노동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닉스 노동자들에게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갑상선암의 경우 최대 2.6배나 높았다. 암과 업무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미뤘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위원장 장재연 아주대 교수)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하이닉스 작업장 산업보건실태 검증결과를 발표했다. 산업보건검증위는 반도체 생산과 직업병과 업무 관련성을 검증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구성됐다. 검증위는 장 교수를 비롯한 산업보건전문가 5명, 시민단체 관계자 1명, 법조계 1명, 노조 관계자 2명, 회사 관계자 2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검증위는 공정 유해인자 분석과 작업환경에 대한 역학조사를 진행했다.

2.6배 높은 갑상선암 발병률

검증위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암으로 병가를 신청한 하이닉스 노동자 108명 중 61명(56.5%)이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뇌종양 11명(10.2%), 위암 10명(9.3%), 유방암 9명(8.3%) 순으로 많았다. 백혈병 등 혈액암은 5명(4.6%)이 걸렸다.

갑상선암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2003~2014년)를 기준으로 볼 때 전체 노동자와 비교하면 발병 확률이 남성은 2.6배, 여성은 1.3배나 높다. 악성과 양성을 모두 포함해 뇌종양 발병률은 남성 1.2배·여성 1.5배, 백혈병은 남성 1.2배·여성 2.0배를 기록했다. 남성 비호지킨림프종 발병률은 1.3배 높다.

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860종 중 발암성과 생식독성이 있는 물질은 18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해물질인 아르신·황산 등이 공정에서 사용됐다. 독성이 높은 화학물질인 에틸벤젠과 크레졸이다. 또 일부 공정에서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기화합물과 비소 등 중금속 유해물질에 노동자들이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증위는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전체 남성 노동자보다 뇌종양과 백혈병 발병 확률이 1.2배 높았다”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업무 인과관계 평가 유보 … 포괄적 보상해야

검증위는 직업병 발병과 업무 연관성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했다. 검증위는 “발병 과정(발생기전)이 복잡한 암과 희소질환은 특성상 인과관계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며 “근로자가 걸린 질병의 인과관계 확인을 유보하고, 포괄적 지원보상체계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검증위는 다만 반도체 공정에서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될 확률은 낮다고 판단했다. 검증위는 “다수의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작업환경측정결과 (화학물질의) 노출 기준에 비해 현저히 낮은 농도가 (노출된 것을) 확인됐다”며 “화학물질이 노동자들에게 직접 접촉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계에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노출환경이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얼마나 높은 농도로 노출됐는지 설명하기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검증위가 마련한 보상지원체계를 토대로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계획이다. 1999년 10월부터 1년 이상 근무한 SK하이닉스·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보상 대상이다. 갑상선암 등 14개의 질병이 보상대상 지원질병 가군으로 분류됐고, 희귀난치성질환과 불임 등 질환이 복지대상 질환으로 분류됐다.

산업보건검증위는 “최고의 산업보건안전 시스템을 (하이닉스가) 갖추기 위해 127개 개선 과제를 제안했다”며 “검증위의 경험과 제안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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