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그린벨트 때문에”, “그린벨트에 묶여서”, “그린벨트를”, “그린벨트가….”

이곳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린벨트 얘기뿐이다. 그린벨트 때문에 집수리도 내 맘대로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부터 수천만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 폭탄을 맞은 사람까지 사연도 제각각이다. 그들이 소리친다. 그린벨트를 풀어 달라고. 또 그들이 절규한다. 제발 그린벨트를 풀어 달라고.

그런데 희한한 일은, 우리나라 법 어디를 봐도 그린벨트라는 말을 찾을 수 없는데 저들은 한사코 그린벨트를 입에 달고 산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식(?) 명칭인 ‘개발제한구역’이 외래어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저들은 왜 그린벨트만을 고집하는 걸까, 난 그것이 몹시도 궁금하다. 그린벨트라는 말 속에 숨겨진 동의·자발·환경 같은 긍정의 신호를 저들이 알고서 떠벌리는 것인지 정말이지 궁금하단 말이다. 하여, 한마디 보탠다. “여보세요, 40년을 당하고도 여전히 그린벨트입니까? 그러니 아직까지 그 모양인 겁니다. 그린벨트는 영국 신사들이나 쓰라 하고 이제부턴 개발제한구역이라 하세요, 아시겠어요?”

그린벨트는 유럽, 특히 영국에서 비롯됐다. 그 연원을 따지고 들면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지만, 대체로 1938년을 그 제도적 출발점으로 기록한다. 그린벨트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런던 주변 지역의 그린벨트가 이때 법제화(Green Belt Act)됐기 때문이다. 당시 런던은, 도시의 외연적 확산을 방지하는 것 못지않게 도시민에게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농경지를 보전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런던은 개발제한구역(development restriction area)이라는 말 대신에 그린벨트라는 이름을 택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개발행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개발제한구역이나 그린벨트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굳이 그린벨트라는 말을 쓴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녹지와 여가로 대변되는 ‘그린’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누가 뭐래도 그린은 생명이요 평화다. 혹여나 그린벨트라는 단어 속에서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진다면 바로 이 ‘그린’ 때문이리라. 따라서 ‘녹지대’로 쓰고 ‘환경’으로 읽은들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문제라면, 언필칭 ‘금지’와 ‘금단’의 영역인 개발제한구역에까지 그린벨트라는 숭고한(?) 이름을 붙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궁하기로서니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궁금하다. 저항이 두려운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파한 것일까, 아니면 개발제한구역의 진실(?)을 모르는 범부의 창작일까? 모르고 또 모를 일이지만, 그린벨트 대신에 레드벨트 혹은 블랙벨트가 명명됐다고 상상한다면 누구라도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른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아무튼 진실이든 조작이든, 그린벨트는 막연히 ‘좋은 것’이고 마땅히 지켜져야 할 ‘무엇’이지만, 개발제한구역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그린벨트가 환경을 연상시킨다면 개발제한구역은 토건과 맞닿아 있다. 전자가 자율과 동의에 기초한 것이라면 후자는 억압의 그것이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개발제한구역법)이라는 참으로 긴 이름 속에서 나는 지난날 ‘개발독재’의 망령을 본다. ‘제한하고’, ‘지정하고’, ‘관리하고’ 한다지 않는가. 그래서인가. 이제 나는 그린벨트라는 이름 속에서 더는 녹색과 평화 그리고 안락함 따위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규제와 단속으로 점철된 원한과 눈물의 역사만 목도할 뿐이다.

개발 제한의 역사, 박정희와 김대중

1971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교시를 통해 개발제한구역 설치 구상을 밝힌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그가 왜 이런 정책을 구상하고 갑작스레 발표했는지 모른다. 다수의 사람이, 1960년대 이후의 성장 주도 정책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돼 대도시 지역으로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는 바람에 개발제한구역 제도 도입이 촉발됐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일을 갖고 구국의 결단 운운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거슬린다. 비록 공익이라는 명분이 있다고는 하나 절차적 민주주의와는 한평생 담 쌓고 살아온 사람이 남의 재산에 줄 한번 화끈하게 그어버린 것을 갖고 ‘구국’이라 부르는 것은 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부는, 대통령의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시계획법(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전부 개정을 통해 입법적 보완을 서둘렀고 도시계획법 발효 시점(1971년 7월20일)에서 열흘을 묵힌 끝에 7월30일 서울을 시작으로 1977년 4월 여천지역에 이르기까지 총 여덟 차례에 걸쳐 대도시, 도청 소재지, 공업도시와 자연환경이 필요한 도시 등 총 14개 도시권역에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하기에 이른다. 1972년 8월에는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이 두 배로 확대됐는데,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지름 30킬로미터 이내의 여섯 개 위성도시를 총망라한 68.6제곱킬로미터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이 됐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해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또는 국방부 장관의 요청이 있어 보안상 도시의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개발제한구역의 도입 취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는 도시계획법 제2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결국, 경계 구분이 모호한 채 도시가 서로 이어지는 현상인 이른바 ‘도시 연담화’를 막는 것이 당시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도입의 첫 번째 정책 목표였다는 얘기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도시 팽창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급속한 산업화의 진전으로 대규모 노동인구가 대도시로 몰려들었을 테고, 경제력이 취약한 노동자들은 지대가 싼 도시 외곽으로 내몰렸을 테고, 이로 인해 기존 도시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졌을 테고, 개발제한구역의 지정과 같은 극단적 정책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었을 테고.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할 수밖에 없었을 정부의 다급함이 그려지지만, 그렇다고 동의까지는, 글쎄다. 그런데 개발제한구역 설정 목적에 환경 보전과 안보가 들어간 것은 왠지 어색하다. 구색 맞추기 냄새가 짙어 보이기 때문이다. 환경 보전이야 다른 법률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할 텐데 ‘왜 굳이’ 넣었을까 싶고, 도시가 커지면 폭탄 한 방에 여럿 다칠 수 있고 하니 내가 모르는 무슨 전략적 고민이 있었겠지만 아무리 눈만 뜨면 반공과 멸공을 외치던 때라고 해도 그렇지 개발제한구역 설정의 목적에까지 ‘안보’가 등장하다니, 불편하다.

개발제한구역 지정이 완료된 시점인 1977년에는 개발제한구역이 전 국토의 5.4퍼센트를 점할 정도로 그 크기가 엄청났다. 그리고 한번 그은 선은 지워지지 않은 채 20년을 넘기고도 꿋꿋이 살아남아 개발제한구역 인근 주민들의 삶을 초토화(?)했다. 이처럼 1971년부터 1997년에 이르는 기간은, ‘구역지정 불변의 원칙’이 유지되는 중에 강력한 규제와 생색내기용 규제 완화가 교차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불패일 줄 알았던 개발제한구역도 이의 조정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이른바 ‘보전론’이 후퇴하고 ‘해제론’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정부는 1999년 7월 일곱 개 중소도시권의 전면 해제와 일곱 개 대도시권의 부분 조정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2000년에는 개발제한구역법을 제정(1월), 시행(7월)하기에 이른다. ‘토지 매수청구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는가 하면, 환경 단체의 해제 반대 운동도 일어난다. 30년을 눈물로 지새웠던 일단의 토지 주인이 전면 해제의 깃발을 올렸지만, 그만큼 환경 훼손을 걱정하는 환경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한편, 일단의 학자는 2008년에 발표된 ‘개발제한구역 조정 및 관리계획’에 들어 있는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운영 기조에 주목하며 해제의 광풍이 일단락된 2003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정책조정 관리기’라 명명한다. 이 시기에는, 보전할 가치가 낮고 기반시설이 갖추어진 지역은 추가 해제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서민 주거 복지 확대를 도모하지만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은 좀 더 강력한 관리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 이른바 투 트랙(two-track) 접근법으로서 보전에만 치우친 과거와 달리 보전과 이용에 관해 종합적인 관리계획을 수립하여 관리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며, 해제 지역은 계획적인 개발을 유도하고 지가 상승에 대한 이익을 환수하는 장치를 만들고 존치 지역은 자연환경 보전을 철저히 관리하고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며 필요한 경우 재산권 피해를 보상한다는 것이 중심적 내용이다. 취락지구 지정을 통해 건축 규제 등을 완화하고 구역 내 공공시설 입지 제한을 위해 훼손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존치 지역에 대한 대책을 시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도시계획법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던 개발제한구역은 개발제한구역법 제정으로 마침내 ‘특별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일반법이 아닌 특별법으로 한 번에 두 계단이나 점프한 것은 과거와 같은 무조건적인 ‘변경 불가’ 방식으로는 더는 개발제한구역에 사는 주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이 또한 개발제한구역의 전면 해제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감내할 자신이 없는 정치권과 공무원들이 ‘정책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만들어낸 ‘억지 춘향’이라 믿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정의 이유가 어디에 있든, 개발제한법은 과거 도시계획법에서 밝힌 개발제한구역 설치 목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개발제한구역법 제1조) 어이쿠, 근데 이게 웬일인가. ‘보안상’의 이유가 빠지다니 말이다. 첨단 전쟁 무기의 개발로 전후방이 따로 없는 상황이 됐으니 굳이 개발제한구역 지정 목적에까지 넣을 필요가 없어진 거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보’가 모든 걸 삼키는 나라인데 설마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설마’는 제3조를 넘지 못하고 ‘역시나’로 변했다.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개발제한법 제3조는 개발제한구역 지정의 사유로 ‘보안’을 들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했지만, 도대체 뭔 놈의 법이 목적 따로 지정 사유 따로 적어놨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도시계획법」이나 개발제한법 모두 ‘안보’를 사랑한 것은 분명하지만, ‘무질서’에 대한 애정에는 이르지 못한 듯 보인다. 모든 문장의 첫머리를 ‘무질서한 확산’이 자리 잡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난 여기서도 삐딱선을 탄다. 도시가 질서 있게 확산만 된다면 문제가 없다는 뜻인가, 그래서 개발제한구역법 제정 이후 개발제한구역이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확산되고 있는 거야? 솔직히 수십 수백에 달하는 온갖 지구와 단지들은 다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한 것이면서. 이처럼 ‘무질서’를 향한 나의 냉소는 꽤 깊고 끈질기다. 이른바 질서 있는 확산이라는 말 속에서 국가 폭력의 징후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행위는 질서요 국민의 그것은 무질서라는. 하여 난 한사코, ‘무질서’라는 단어 앞에 ‘개인에 의한’이라는 전제를 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국가)는 되지만 너(국민)는 안 돼”라고 좀 솔직하게 말하지, 마치 ‘무질서’가 문제라는 듯 말장난을 늘어놓는 폼이 너무나 눈꼴사납지 않으냐 말이다.

개발을 제한하라!!!

개발제한구역을 명문화했던 도시계획법이 국토이용관리법과 통합을 이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이라는 긴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은 지난 2002년도의 일이다. 이 법에 따르면 우리 국토는 도시지역·관리지역·농림지역·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나뉘는데, 도시지역은 주거지역·상업지역·공업지역·녹지지역 등으로 다시 구분되고 관리지역은 보전·생산·계획 관리지역 등으로 세분된다. 그런데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살고 있고 토지이용 형태도 다양하기 때문에 용도지역만으로는 충분한 관리가 어려워 앞의 네 개 용도지역을 바탕으로 특별한 목적을 가진 지구나 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미관지구나 개발제한구역 등이 그 예다. 단순화한다면, 지역 안에 지구나 구역이 있는 셈인데 같은 녹지지역(도시지역) 안에서 개발제한구역인 곳과 아닌 곳이 나뉘고 동일한 주거지역 내에 특정한 곳만 미관지구로 지정되는 이치다. 이미 간파했겠지만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할 목적으로 지정되는 것이니만큼 도시지역, 그것도 녹지지역에만 위치한다. 상업지역이면서 동시에 개발제한구역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지목과 구역의 차이다. 전혀 다른 범주인데도, ‘대지는 주거지역, 임야나 전답은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에 하는 말이다.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건물을 짓거나 토지의 형질을 변경하려는 경우, 그리고 토석을 채취하거나 토지를 분할하는 것과 같은 개발행위를 하고자 할 때는 행정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법률의 특징인 열거주의(positive system)에 따른 것이지만, 허가만 받으면 개발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개발을 제한하는 규정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런데 개발제한법은 그 근본적 철학부터 다르다. 개발제한법 제12조 규정이 이를 웅변한다.

“개발제한구역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 죽목(竹木)의 벌채, 토지의 분할,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 또는 도시계획사업의 시행을 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려는 자는 도지사 등의 허가를 받아 그 행위를 할 수 있다.”

건물을 짓지 못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용도를 바꿀 심사라면, 꿈 깨시라. 땅을 깎거나(절토) 쌓거나(성토) 혹은 고르게 하거나(정지) 포장하는 짓(?)은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한다. 나무를 베겠다고? 큰일 날 소리다. 토지 필지를 나누는 일은 개발이 자유로운 세상에서나 고민할 일이다. 공터에 물건을 좀 쌓아두겠다고? 물론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개발제한구역에서의 행위제한을 규정한 개발제한구역법 제12조의 내용이다. 실로 엄청난 법 아닌가.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고 ‘할 수 있는 것’이 예외라니 말이다. 게다가 예외 규정은 또 왜 그리 방대한지, 그 실상의 끄트머리라도 한번 맛보게 되면 그 누구라도 기절초풍하고 말 것이다. 이런 식이다. 허가를 받아 할 수 있는 ‘예외’ 행위가 총 아홉 가지인데(개발제한법) 그중 첫 번째 허가 행위만 해도 다섯의 유형으로 나뉘고 그 각각의 유형은 18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으로(개발제한법 시행령 ‘별표’) 다시 세분된다.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각각의 세분된 허가 행위는 조례와 지침을 통해 또 한 번 ‘정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국민의 명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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