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J씨는 이곳에선 민원의 지존(?)으로 통한다. 그 냉정함과 집요함으로 웬만한 공무원들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어서다. 그럭저럭 먹고살 만했던 자신의 가게 옆에 불법(?) 영업점이 들어서는 바람에 사업이 망했고 이로 인해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쓰러졌으니 시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살길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될 일을 왜 도와주지 않으면 언론에 알리겠다고 해서 여러 사람 맘을 상하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요일 오후의 주민센터는 한가하다 못해 여유롭기까지 했다. ‘서넛의 민원인과 예닐곱의 공무원’, 그 비대칭이 어색하게 느껴질 무렵 반가운(?) 손님 한 분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금방이라도 피곤함에 전염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여기 앉으시죠”, “어떻게 오셨습니까”, 뭐 이런 의례적인 인사말을 채 건네기 전인데도 말이다. “시 때문에 우리 가족이 파멸됐습니다.” 그녀의 첫 일성은 강렬했다. 뭔가 뭉툭한 걸로 머리를 얻어맞는 그런 느낌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도발적인 얘기인지라 순간 당황했다. 무슨 말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인데도 옆 직원은 말 한마디 보탤 생각은 않고 뜻 모를 사인만 연신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J씨예요. 그러려니 하고 들으세요.” 뭐 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30대 초반이라는 나이와 맞지 않게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사는 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싶었다.

“전 재산을 털어 시작한 음식점이 악 소리도 못하고 순식간에 망했습니다. 가게 바로 옆에 들어선 ‘무한 리필’ 샤부샤부집이 손님을 싹쓸이해 갔기 때문입니다. 대출받아 시작한 사업인지라 금세 빚이 빚을 낳았고 권리금도 한 푼 챙기지 못한 채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인 올해 마침내 파산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남편은 당뇨합병증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 다리는 괴사됐고 치아마저 80퍼센트 이상 소실된 상태입니다.” 집세를 내지 못해 곧 쫓겨날 판이고, 가스며 전기며 모조리 다 연체돼 끊는다는 얘기뿐이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활동비를 내지 못해 쫓겨날 지경이고….

‘무한 리필’을 파산의 주범으로 꼽은 이유가 독특(?)했다. 정당한 가격을 받아야 하는데 손님을 끌기 위해 원가 이하로 팔았으니 ‘불법’이고 따라서 이를 허가해 준 시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음식 장사를 하려면 식품위생법에 따라 시에 영업신고를 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요. 제가 관련법을 검토해 봐도 시는 법에서 정한 대로 신고했는지 검토하고 ‘신고필증’만 교부하면 되는 것이지 ‘무한 리필’의 불법성까지 판단할 의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과했다 싶을 정도로 나의 얘기는 ‘의견’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마치 선생이 학생에게 야단이라도 치듯 충고라는 걸 해대고 있었던 것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J씨가 태클을 걸고 나왔다. “시흥시가 책임지지 않으면 언론에 억울함을 알릴 겁니다.” “….” 가끔 이런 일을 겪는지라 새로울 것도 없건만 그날의 나는 절제를 잃고 있었다. 그녀가 ‘사연’을 언론에 알리든 말든 내가 굳이 발끈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이성을 잃은(?) 걸 보면 그녀의 계산된 엄포를 ‘협박’으로 느꼈나 보다. 여하튼, 도무지 설득력이 없어 언론마저 외면할 것이 뻔해 그녀가 상처를 입게 될 게 걱정되기도 했거니와 무조건 민원인의 말이 옳다고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과하더라도’ 잘못을 지적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의 잘못’이라는 프레임이 깨져 버리면 시의 ‘책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되고 이를 근거로 한 ‘지원’ 요구가 명분을 잃게 되니 한사코 ‘잘못’을 주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혹시 말입니다. 시끄러우면 좋을 게 없으니까 내 말이 맞든 틀리든 관계없이 무조건 내 요구를 들어줄 거야, 뭐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 건 아닙니까?”

뱉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침묵 모드로 바뀐 그녀가 짠해 보였다. 오죽하면 여북했겠나 싶기도 했다. 다시 물었다. “아주머니, 근데요. 만약 시에 잘못이 없다면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강한 긍정의 신호였다. 이때를 놓칠 리 없는 나는 다시 한 번 몰아붙였다. “정부의 지원은 책임을 물어야만 받을 수 있는 ‘보상’이나 ‘배상’이 아니고 국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러니 시의 잘못은 잘못대로 처리하고(내가 보기에 시는 잘못이 없어 보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부군의 건강 회복과 살 집 마련 그리고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한 일을 서두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무원들도 사람인데 ‘시 때문에 망했다. 잘못했으니 책임져라. 언론에 알리겠다’고만 하는 사람한테 뭔가를 해 줄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괜한 반감만 살 뿐 아무런 해결책을 얻지 못하는 책임 타령보단 당장의 해결책을 요구하는 편이 훨씬 현명한 일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J씨의 ‘태도’를 계속 비판했던 것인데, 예상과 달리 그녀의 태도가 고분고분해졌다. “정말 의료비와 주거비를 지원받을 수 있나요?” 허세와 막무가내를 벗어던지자 그녀의 숨겨진 ‘본심’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고 있었고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의기투합, 위기의 가정을 구하라!

관계 공무원들을 소집했다. 기초생활보장을 담당하는 공무원 두 명과 긴급 구제를 맡고 있는 공무원 두 명, 총 네 명이 참석했다. 소집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못마땅한 심경을 토로했다. “왜 그 사람을 도와야 합니까?” 그들의 질문은 냉담하리만큼 직설적이었다.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사람인데 민원인의 요구대로 해 주면 우리가 마치 뭐라도 잘못해서 그러는 양 떠들고 다닐 것 아닙니까.” 그간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해체가 불 보듯 뻔한 가정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살길이 막막해 악만 남아 그런 거 같으니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엽시다.” 설득이 주효했는지 아니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대책들’을 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은 물론이고 어렵사리 전세 자금도 마련됐다. 복지재단과 연계해 치아를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렇게 쉽게 풀릴 일을 너무도 멀리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허탈하기까지 했다. 여하튼,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여럿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뿌듯해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실망 또 실망

출근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예의 그 피곤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이네요. 이사 준비는 잘 돼 가십니까?” 안부를 물었지만 인사가 면구스러울 정도로 아주머니의 대답은 차갑고 신경질적이었다. “고맙기는 한데요, 전세자금만 있다고 이사를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사 비용, 아이 학원비, 에어컨 구입비 등 해서 1천만원가량이 더 필요한데 해결 좀 해 주세요.”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저 아찔하기만 했다. 너무 불쾌해서 지금 무슨 말을 했다간 언쟁으로 번질 것 같아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집요했다. 그 후로 꼬박 일주일을 전화와 문자 공세에 시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더는 머뭇거리다간 더 큰 것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자 이제껏 참아왔던 속 얘기를 하고 말았다. “아주머니,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고맙다는 공치사는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의 양식만은 지키셔야죠.” 어느덧 나의 말투도 사무적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전세 자금 지원은 1년에 대여섯 가구 정도에만 지원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연재해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직면한 저소득 가정에 지원되는 거거든요. 솔직히 아주머니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걸 지원해드린 거란 말씀입니다.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재해’를 대비한답시고 당장의 ‘위기 가정’을 모른 체할 수는 없다는 저의 주장에 시가 동의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코 자화자찬이 아니에요. 아주머니께서는 만족스러워하지 않으시겠지만 이번 시의 지원은 정말이지 이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우로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번 지원을 결정하면서 단 한 번도 아주머니께서 주장하시는 것처럼 시의 잘못이나 책임이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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