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를 품고 맞는 사람이 죽으라고 쐈다. 죽이려는 의도는 분명히 느껴졌다. 물줄기는 거셌고, 목표를 찍은 물대포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그 목표물을 향해 치밀하고 집요하게 물줄기를 뿜었다. 일초, 이초, 삼초, 사초, 오초, 육초, 칠초, 팔초…. 로봇 대가리처럼 생긴 물대포엔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물대포를 쏘는 사람들은 맞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넘어졌는지, 일어났는지, 달아났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합류하러 달려오는지, 혼자 남아 버티는지. 그랬는데도 집요하게 끈질기게 잔인하게 고압수를 쐈다.

광화문 동화면세점 건물 앞 차벽에서만 물대포 세 대가 로봇처럼 대가리를 휘저으며 시위대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대가리를 쭉 길게 내밀도록 설계된 물대포는 그 대가리를 차벽 너머로 직각으로 꺾어 차벽 밑에 있는 시위대를 정밀 조준했다. 저 정도 세게, 저 정도 오래 쏜다는 것은 죽으라고 쏘는 것이라는, 살인하려고 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대포 대가리에 달린 카메라가 찍어 내는 영상은 혼자서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보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살수(撒水) 키를 쥔 운전자가 있었을 테고, 그 옆에서 보조하는 자가 있었을 테고, 그 뒤에서 명령하는 자가 있었을 테다.

야간에 집단으로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공안’이라는 명목하에 사람을 해치려는 명백한 의도, 즉 살인할 의도를 갖고 정조준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차벽 위 너머로 대가리를 자유자재로 흔들어 대며 최첨단 카메라로 목표물을 찾아 화학물질 가득 푼 물줄기를 발사하는 물대포가 보여 주는 광경의 기괴함은 인간을 절멸시키려 전쟁을 일으킨 기계들을 다룬 과학공상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화학물질 가득 찬 맹독성 물대포를 맞은 생명체는 인간만이 아니었다. 노란 색 자태를 곱게 빛내던 광화문 네거리의 은행나무들도 나무둥치 뒤로 시위대를 숨겨 줬다는 이유로 물대포의 공격을 받았다. 화학물질을 흠뻑 뒤집어쓴 저 은행나무는 내년에도 아름다운 잎들을 움트게 할 수 있을까. 틀림없이 환경법 위반일 터.

“콧구멍·귀·입 등 해부학적으로 몸의 입구에 해당하는 부위들의 신체조직이 고압의 물 분사로 인해 손상될 위험이 대단히 크다. 물 분사로 인한 안구 손상 및 실명 위험도 우려된다. 안경이 깨지면서 부서진 유리·플라스틱 등의 물질은 위험도를 증가시킨다. 거리에 흩어져 있는 각종 부스러기들이 물대포 분사로 가압(加壓)돼 피부에 2차 손상을 가할 위험이 예상된다. 가압된 물체의 물질적 특성에 따라 날카롭거나 뭉툭한 외상을 남길 수 있다. 여기엔 시위대의 무기가 물 분사로 가압돼 시위대 쪽으로 날아갈 위험성도 포함된다. 몸이 젖기 때문에 저체온증의 위험도 생긴다. 이로 인한 심리·정신적 건강 문제가 즉각적으로 혹은 이후에 나타날 위험도 있다.” 영국 정부가 만든 물대포 관련 정책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올해 7월 영국 정부의 치안 책임자 테레사 메이 내무부 장관은 “나는 경찰의 정당성과 (국민의 동의를 받는) 치안활동이라는 원칙의 관점에서 물대포의 잠재적 영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의 권한이 미치는 잉글랜드와 웨일즈 경찰에 물대포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는 “(내 지휘하의) 우리 경찰들은 일상적으로 총기를 휴대하지 않아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군대식 장비를 등 뒤에 숨기지도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공안’을 빌미로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영국 경찰이 독일제 중고 물대포 세 대를 수입하자 보수당 정부의 내무부 장관이 수입 물대포 사용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영국 정부의 물대포 보고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내 눈 앞에서 대가리를 내밀어 화학물질을 탄 물을 엄청난 수압으로 뿌려 댄 물대포는 살인무기에 다름 아니었다.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물을 흩어 뿌리는 것도 위험한데, 대한민국 경찰은 물대포 대가리를 특정인을 향해 고정시키고 초고압 분사를 지속했다. 이는 상해를 입힐 의도를 넘어 살인하려는 고의를 띤 범죄행위처럼 느껴졌다.

특히 물대포 대가리의 운전자 및 통제자들은, 시위대와 직접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차도나 인도가 아닌, 차벽과 경찰병력에 둘러싸인 첨단 시설로 가득 찬 차량 안에서 아무런 신체적·정신적 위험이나 공포감 없이 근무하던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특정인을 향해 그토록 집요하게 화학물질을 푼 고압의 물을 분사한 행위는 고의적인 살인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법치 사회라면, 인명을 살상할 의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아무런 불법행위를 저지르지도 않은 시위대 다수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경찰 범죄자들을 철저히 색출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대한민국 노동정책의 수장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 옆에 꼭두각시처럼 붙어 앉아 이미 허가돼 합법적인 미래 시위에 대해 불법·폭력시위 운운하며 살인 진압을 부추겼다. 자신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이기권 장관도 살인 물대포 배후조종의 한 사람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