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올해로) 20주년인데 초심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주길 바란다.”

걱정인 듯 비난인 듯 아리송한 발언이다. 노동계와 사사건건 대척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대부분을 전날 창립 20주년을 맞은 민주노총을 깎아내리는 데 할애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세계 최악 수준의 노동시간과 산업재해 사망자수를 거론하며 새누리당을 “노동개악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에 발끈했다.

새누리당의 노동개혁 5대 법안이 민주노총이 비판하는 대목을 개선하는 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의적인 해석으로 핵심은 피해 갔다. 노동계에 치명상을 입힐 내용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정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노동계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법안에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독소 조항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쏙 빼먹었다.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까다롭게 해서 청년 당사자들이 반대한다는 사실도 무시했다. 지급률이 오르고 수급기간이 느는 것만 강조했다. 출장 중 당한 재해에 대한 산재 인정 축소 논란이 있지만 출퇴근 과정에서 발생한 산재를 넓게 인정한다는 대목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그런데 김 대표는 기간제 사용기간과 파견 허용업무 확대 내용이 담겨 있어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발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모른 척했다.

자랑스러운 듯이 노동개혁 5대 법안을 설명하다 이 둘을 빠뜨린 이유는 뭘까.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노동개혁 5개 법안을 가로막는 것은 비애국적행위”라며 노동계를 맹비난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의 아픔과 청년들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8건에 이어 올해 10월까지 24건의 민주노총 비판 시위가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앞에서 열린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리는 규탄시위는 뭐라고 설명할까.

김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빈약한 논거로 노동계를 공격한 것은 한두 번 이 아니다. 최근만 해도 "CNN 쇠파이프 보도"와 "콜트·콜텍 강성노조로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모두 허위사실이었다.

노동계는 김 대표의 막말이 쏟아질 때마다 여러 차례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단 한 번도 공개토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 떳떳하고 자신 있다면 토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정치인의 기본 소양이다. 토론할 의사가 없다면 집권여당 대표 자격으로 확인되지 않는 막말을 내뱉는 것부터 중단해야 한다. 집권여당 대표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기본권을 부정해서야 되겠는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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