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교통사고로 트럭이 반파돼 폐차했다. 그런데 새 차를 뽑아도 내 맘대로 등록을 할 수가 없다. 차는 내 것이로되 명의는 지입회사로 해야 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때문이다. 지입 회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등록이고 뭐고 불가능하다. 돈을 더 달라는 지입회사 요구를 거절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 차를 등록(대차)해 버렸다. 지입회사의 농간에 협회와 시가 넘어간 것인데도, 시는 잘못이 없다는 얘기만 한다.”

화물 트럭 운전기사인 L씨는 고속도로 운행 중 차를 폐차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다. 부상을 당했지만, 생계가 급했던지라 신차 도입을 서둘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지입 제도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아무리 자신 소유 차량이라도 화물 영업을 하려면 지입회사(운송사업자) 명의로 등록을 해야 하고 사고 차량을 폐차할 때도 마찬가지인 황당한(?) 현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런 제도를 악용해 신차 등록을 빌미로 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말이다. 듣던 대로 L씨에게도 관리비 인상 요구가 들어왔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관리비 인상(월 25만원→월 100만원)에는 합의했으나 추가적인 금품 요구를 거부하자 지입 회사가 일방적으로 위·수탁 관리 계약을 해지해 버렸다.

지입차주와 지입 회사 간 갈등은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니고 법 개정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있어 왔던 터라, 여기까지의 얘기만 갖고는 잘잘못을 따지기엔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다음 얘기를 들으면 L씨의 사연에 공분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이른바 ‘대·폐차’(신규 차량을 등록하는 ‘대차’와 기존 차량을 말소하는 ‘폐차’는 이렇듯 한 단어로 쓴다. 폐차만 하고 대차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는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현물출자를 해지하고, 기존 차량 등록을 말소하고, 새로운 차량을 등록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통상 지입차주와 지입회사 간 갈등이 심화된다. 그래서 관련 법률은 대·폐차 업무별로 ‘협회’와 ‘시’(차량관리사업소)에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이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분쟁을 줄일 수도 있고 더 키울 수도 있다. 불행히도 L씨의 경우는 시청이나 협회 모두 분쟁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시작은 시에서 먼저 했다.

기존 차량의 등록 말소(폐차)가 이뤄졌는데도 신규 차량 등록을 차일피일 미루는 지입회사의 행태가 걱정이 됐던(결국은 위·수탁 관리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했지만) L씨가 시청을 방문했다. 혹시나 자신이 아닌 다른 지입차주 이름으로 신규 차량 등록 신청이 들어오면 연락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담당자는 실제 등록 업무를 맡고 있는 차량등록사업소에 알리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반드시 알려야 하는 건지는 확인해 봐야 할 사항이지만 여하튼, 시에 이어 이번에는 ‘협회’가 결정타를 날렸다. 통상 한 번 내주는 대·폐차수리통보서를 두 번에 걸쳐 발행한 것이다. 똑같은 통보서를 발급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다른 것을 각각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처음에는 L씨의 볼보 트랙터를 폐차하고 새로운 쌍용 트랙터(L씨는 이 차를 샀다가 등록이 되지 않아 결국은 손해를 보고 다시 팔아야 했다)로 대차하는 대·폐차수리통보서를 발급했는데, 3개월이 지나서는 다시 L씨의 볼보 트랙터를 폐차하고 TGX(○○물류와 위·수탁계약을 체결한 김 아무개라는 새로운 지입차주의 소유 차량이다)로 대차하는 새로운 대·폐차수리통보서를 발급해 준 것이다. 즉 ○○물류는 처음 통보서를 이용해 L씨 차량을 말소(폐차)했고 두 번째 통보서로는 L씨가 아닌 다른 사람 차량을 신규로 등록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시는 처음 통보서를 근거로 차량을 말소했고 나중 통보서를 근거로 또 신규 차량을 등록해 줬다. 좀 거칠게 말하면, 시와 협회 그리고 ○○물류가 합작해 ‘아직 분쟁 중인’ 신규 차량의 등록을 강행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류와 협회는 짝짜꿍이 맞을 사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가 여기에 동조(?)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당자는 말소든 등록이든 실제 소유자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이해관계자의 동의 여부야말로 시의 과실 또는 위법을 가를 결정적 증거였다. 관련 규정이 있는지 없는지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살펴야 할 부분이었다.

권고, 실수 그리고 패배

“시의 처분(등록)은 절차적 하자가 있습니다. 자동차 등록시 등록 관청은 제3자 동의서를 징구해야 합니다. 이때 제3자는 등록 명의자를 제외한 통보서(대·폐차수리통보서)상 이해관계자입니다. 통상 통보서에는 폐차 및 대차 차량의 위·수탁 차주가 동일인으로 나오기(사고 차량을 폐차하고 새로운 차량을 대차) 때문에 제3자인 위·수탁 차주 1인의 동의서만을 징구하지만, 등록 명의자인 ○○물류측이 제출한 새로운(두 번째) 통보서는 폐차 및 대차 차량의 위·수탁 차주를 다르게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제3자 동의서는 폐차 및 대차 차량의 위·수탁 차주 모두로부터 징구해야 합니다. 더구나 시는 신규 차량 등록 이전에 협회의 첫 통보서에 의거해 민원인 차량 등록을 말소한 바 있어 새로운 통보서에 기록된 폐차 정보만으로 민원인의 존재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금번 시의 등록 처분은 자동차 등록규칙 제24조를 위반했다는 것이 호민관의 판단입니다. 비록 시의 법규 위반이 협회의 매우 이례적인 통보서 발급에 기인했다 할지라도 ‘제3자 동의서 징구’를 규정한 자동차 등록 규칙 위반 자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쓴 시정 권고문이다. 보다시피, 시정을 받아 내기 위해 나는 자동차등록규칙 위반을 물고 늘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시에 호민관 권고를 거부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시는 즉각적으로 답을 보내왔다. 그곳에는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이 들어 있었다. “자동차등록규칙 제24조에서 말하는 ‘제3자’는 통상 ‘차량의 저당권자나 압류권자’를 지칭하며 지입차주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였다. “불법적 방법에 의해 등록된 기 신규 등록을 취소하라”라는 호민관의 시정 권고의 논거가 상급 기관의 답변에 의거 제척되는 상황에서 더는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백기를 들 수밖에.

등록규칙 위반과 같은 구체적 법률 규정을 논거로 삼는 대신 상담내용 전달 미이행과 같은 업무 실수를 문제 삼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의문이다. 이미 신규 차량의 등록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를 번복할 경우 또 다른 민원이 생길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호민관 권고를 ‘거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왠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이따금씩, 가슴 팻말을 들고 시청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L씨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 졸지에 생계를 뺏긴 늙은 가장의 억울한 사연 하나 제대로 풀어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한동안 괴로워했다.

제언(쟁점 그리고 제도 개선)

정치권의 화물자동차법 개정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사업자 단체의 조직적 반발 때문인지 행정 당국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글을 쓰고 있는 2014년 현재까지도 화물운수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화물운수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위급하다. 자영업자로 분류돼 노동자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단계 거래, 지입제 등으로 인한 불평등한 계약과 낮은 운임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렇듯 법률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별처럼 많다. 그러나 그 세세한 방향과 내용까지는 나의 역량 밖이다. 다만 대·폐차 관련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다. 부족하지만 몇 마디 보탠다.

우선 운송사업자의 준수사항을 규정한 화물자동차법 제11조의 개정이 시급해 보인다. 위·수탁계약으로 차량을 현물출자 받은 경우 위·수탁차주를 자동차등록원부에 현물출자자로 기재하거나, 해당 차량을 위·수탁차주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매도하거나 저당권을 설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등록원부에 현물출자자를 부기할 수 있게는 돼 있으니 여기서 핵심은 ‘동의 없이 매도 또는 설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조항만 하나 있었더라도 민원인과 같은 억울한 사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위·수탁계약을 해지함에 있어 운송사업자의 횡포를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의 신설도 필요하다. 운송사업자의 귀책사유로 허가 취소, 사업 정지, 감차 조치가 된 경우 해당 운송사업자와 위·수탁차주와의 위·수탁계약을 해지된 것으로 본다든지 운송사업자로 하여금 정당한 사유 없이는 위·수탁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하거나 위·수탁차주가 계약의 갱신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등이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최근 대·폐차 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15일로 단축했다. 폐차와 대차를 동시에 신고토록 함으로써 폐차 먼저 한 후 대차 등록을 빌미로 위·수탁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운송사업자의 횡포를 차단해 보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근본적 제도 개선인 법률 개정보다 손쉬운 방안(시행규칙 개정)을 찾은 셈인데 개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기간만 줄인다고 편법이 사라지겠는가도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낫겠지 하는 바람을 숨길 수가 없다. 뭐가 됐든지 꿩 잡는 게 매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화물자동차의 대·폐차와 같은 경미한 사항을 변경하려면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제3조1항 및 3항)


[화물자동차 대·폐차 업무 처리규정]
대·폐차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에 사용되는 차량을 교체하는 것을 말한다.(제2조3호)

협회는 대·폐차신고를 수리하는 경우 폐차차량 및 대차차량의 내용 등을 기재한 ‘통보서’를 신고인에게 2부 발급(폐차 및 대차 차량 등록업무 신청시 각각 사용)하고, 운송사업 관할관청 및 자동차 등록부서에 동시에 통보하여야 한다.(제13조2항)

화물자동차가 위·수탁 차량인 경우 협회는 ‘자동차등록원부 사본’과 ‘자동차등록증 사본’, ‘위·수탁차주 동의서(인감도장 날인)’, ‘인감증명서(3개월 이내 교부된 것)’ 등을 받아야 한다.(제16조2항)

협회는 관할관청에 해당 차량관련 유가보조금을 지급받는 자가 동일한 위·수탁차주인지를 확인해 통보서를 발급해야 한다.(제16조3항)


[위·수탁 화물자동차에 대한 운송사업 허가업무처리지침]
기존 운송사업자가 협회에 화물운송사업 허가사항 변경신고(위·수탁화물자동차의 대·폐차)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위·수탁차주의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제10조 1항)

운송사업자가 동의서 등을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 협회는 화물자동차의 대·폐차 신고를 수리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0조 2항)


[자동차 등록규칙 제24조]
등록 원인에 대해 제3자의 동의 또는 승낙이 필요한 경우에는 동의 또는 승낙을 받은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등록신청서에 첨부해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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