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홍보대행사에서 6개월 일했어요. 3개월은 인턴이라며 84만원 주더라고요. 월세 30만원 내면 남는 돈도 없고, 오전 7시40분 출근해서 퇴근시간이 따로 없는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렸습니다. 성취감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더군요.”

조윤희(29)씨는 첫 직장을 그렇게 그만둔 뒤 다시는 서울에서 직장을 얻지 못했다. 결국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간 그는 2년간 부모님 지원을 받으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탈락하면서 포기했다. 현재 부산동래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직업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부산은 대졸 초봉이 120만~130만원 수준이더라고요. 업무강도에 비해 급여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결혼자금으로 100만원씩 저축하고 있답니다. 짠순이 소리도 듣고요. 지금 청년들은 취업 자체가 어려운지라 경제적 자립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청년들이 적어도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시스템이 됐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요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 세미나실에서 ‘66명 여성에게 듣는다-자립의 식탁 : 여성의 먹고사는 이야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문자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오류를 지적하고 여성의 먹고사는 이야기와 경제적 자립의 실태·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여성단체연합은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11개 여성단체와 함께 6월부터 10월까지 66명의 여성을 심층면접했다.

“저는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전산담당 직원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닭갈비집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굉장히 잘돼서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썼죠. 하지만 조류독감이 발생한 뒤에는 손님 발길이 뚝 끊겼고 가게가 급격히 어려워졌어요.”

40대 후반 맞벌이 여성 최정분씨는 가게를 유지하려고 카드빚을 쓰며 돌려막기를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한때 죽으려고도 했죠.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그러지 못했지만요.”

그때 지인의 도움으로 파산신청을 선택했다. 지금은 월세를 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여성들은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어딘지 잘 몰라요. 저처럼 나쁜 마음 먹지 말고 지인들과 고민을 나누고 국가제도를 적극 활용했으면 합니다.”

여성 노동권 보장·소득수준 개선 시급

심층면접 분석을 맡은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공주씨는 주제발표에서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의 중요한 요소로 능력과 상황에 맞고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꼽았다”며 “다수의 여성들은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했다고 평가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전업주부들은 소득이 발생하는 일자리가 없는 탓에, 소득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저임금 분야에 종사하기 때문에 생활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벌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성의 일은 서비스직·저임금·비정규직·장시간 노동 같은 성별분업·성차별 상황에 놓여 있다.

공씨는 “이번 연구에서 만난 많은 여성들이 생애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생계를 꾸려 가야 하는 생계부양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노동시장에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많은 여성들의 실제 경험과 삶에는 들어맞지 않는 허구적인 모델임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면 노동시장에서 노동권을 보장받고 임금·소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동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여성의 소득개선을 위해 우선 최저임금 현실화와 성별 임금격차 해소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개선과 남성생계부양자 위주의 복지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정형옥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정연 여성가족부 경력단절여성지원과 사무관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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