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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와 협약정치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사관계 교과서는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은 일원주의(unitarism), 다원주의(pluralism), 그리고 혁명주의(revolutionarism)로 불리워진다.

일원주의는 노와 사의 이해가 다르지 않다는, 하나의 강요된 인식이다. 역사적으로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고, 주로 권위주의 국가에서 많이 강조됐다. 20세기의 한복판 약 30여년간 스페인을 지배한 독재자 프랑코 시대에 노동조합은 부정됐고, 대신 노사를 하나로 간주한 국가의 끄나플 조직체가 전 산업과 사업장을 차지했다.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에서도 비록 노동조합을 형식적으로 인정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배제와 억압을 했다. 스페인처럼 제도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든, 한국처럼 겉으로만 인정을 하든, 두 권위주의 국가에서 노사관계를 대하는 지배이데올로기적 원리는 공히 일원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혁명주의는 노와 사의 이해가 상호 적대적이고 양립 불가능하기에, 노가 사를 타도해 자본의 지배가 없는 노동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대개 일원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강한 곳에서, 다원주의적 노사관계가 채 제도화되지 못했을 때, 노동운동이 태동하고 분화하는 시기에 분출하곤 한다. 스페인의 공산당계열 노조인 CCOO는 프랑코 시절 공식활동이 금지된 가운데 이러한 혁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지니고서, 지하에서 투쟁을 전개했다. 전태일 열사 이후 태동한 민주노조운동이 약 20년간 탄압 속에서 성장하면서, 한국의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도 이러한 혁명주의적 실천그룹들이 활성화된 기억이 있다.

이 둘과 달리 다원주의는 노와 사 양자의 이해가 상이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적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자연스럽게 역지사지하는 소통의 과정과 상호 양보하는 타협을 중요시한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이 존중받는 따뜻한 자본주의 사회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원주의적 노사관계론의 입장에 선다. 그들은 시장만능주의가 파괴하는 서민의 일상에 대한 정책적 보호가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보호가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에 대한 우려에도 공감한다. 노동조합이 제약 없이 인정받고 충분히 그 기능이 활성화되되, 기업 입장도 공감할 수 있으면서 양보와 타협도 가능한 성숙한 조직체로 그것이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

이른바 ‘대타협’으로 칭해지는 9월15일의 사회협약은 적어도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적 노사관계 원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체결된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한국은 여전히 노동기본권의 일정한 영역에 있어 제약을 가하고 있고, 특히 노동조합의 활동이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나라다.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일원주의가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혁명주의적 처방이 현실적으로 대두하는 식으로 격동의 민주화 이행(democratic transition)을 겪은 지 채 사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다원주의적 노사관계는 아직도 우리 안에 충분히 체화돼 있지 못하고, 여전히 그러한 제도와 관행의 정립을 향해 더 나아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큰 의미에서 ‘노동시장 미진입자들’을 의식하고 겨냥해서 ‘노동시장 기진입자들’의 이해를 조정한 것이고, 그런 식으로 우리 경제 구성원들의 지속가능한 미래 일자리, 일터의 모습을 만들어 보려는 이해당사자들의 주체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 의도상으로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으로의 탈바꿈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협약 내용대로 실행됐을 대 현실의 노동시장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 여전히 이견이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노동계의 ‘양보’가 이뤄진 영역에 대해서는 주지하듯이 심각한 우려가 크다. 협약 자체로 불완전하고 미진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노사관계의 길을 공고화시키는 것, 이해당사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역지사지하는 관행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공감한다면, 협약정치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키워 나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번 협약에 대해서도 그것의 문제와 한계에만 지나치게 몰입하고 들추기보다, 향후 보다 나은 협약에 의해 그러한 문제점들이 해소될 수 있도록, 이해당사자들과 그들 주변의 주요 행위자들이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해 가는 것이 더욱더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월권적 일원주의와 한탕주의적 혁명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건강한 다원주의가 중심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협약다운 협약이 체결되고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진정 기능할 수 있도록, 향후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꾸려 가는 모든 주체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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