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청년. 불덩이의 말이다. 세상을 용납하지 못하고 심장이 터지도록 뛰쳐나갈 청춘의 말이다. 그 청년에게 세상은 불의다. 낡았다. 청년실업, 차갑게 식은 말이다. 어떤 열정의 불도 없이 세상에 순종하고서 심장이 뛸까 조심스럽다. 이런 말이 이 나라 청년을 덮쳤다. 오늘도 우리의 청년은 취업 앞에 소심하다. 기업의 채용공고 기준에 따라 어학·학력 등 스펙을 쌓기에 바빠서 청춘의 말조차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오직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보일 뿐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오늘도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노동개혁을 몰아붙이고, 이에 반대하는 노동조합·노동운동은 기득권 세력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이런 날, 노동자권리 타령하는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나는, 상위 10%의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시키면 10만명이 넘는 노동자를 신규채용할 수 있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읽었다.

2. “상위 10% 임금동결시 11만명 채용.” 상위 10%의 노동자들이 소속 사업장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임금을 동결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사업장마다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이 제각각이다. 특히 노조조직률이 10% 안팎에 불과하고 노조가 있어도 사업장단위의 협약수준에서 임금수준이 정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해당 사업장의 영업이익 등 경영실적·지급능력·임금체계가 다르고 그에 따라 임금수준이 달리 지급된다. 그러니 그런 일이 일어나면 늘어날 일자리가 10만명이 넘는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행한 연구보고서 때문에 시끄러웠다. 언론은 요란하게 보도하고, 노동계는 엉터리라고 비난하고, 논란이 되자 정부는 민간 교수가 수행한 연구를 한국노동연구원 명의로 발행한 것이 문제라며 회수하고 시끄러웠다. 지난 15일, 나는 대구지역 사업장의 통상임금소송 재판을 마치고서 돌아오는 서울행 KTX에서 제목에 사로잡혀 이 뉴스를 읽고 말았다. 그런데 “100%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면 몇 십 만명을 신규채용할 수 있다고 발표하지, 고작 상위 10%가 뭐야” 하며 소심한 연구라고 나는 못마땅하게 읽었다. 임금동결이라는 의도가 분명한 연구였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몰아붙이는 때라서 발표 시기도 적절한 연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심한 것치고는 너무 실현가능성이 없었던 연구였다. 그래도 뉴스를 나는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11만명이 신규채용된다면 청년도 좀 채용될 수 있을 테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3. 이 나라에서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 문제된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어제도 체감 청년실업률이 30%에 육박한다고 언론은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를 보도했다. 새삼스런 연구결과가 아니다. 이미 공식 실업률이 10%에 이르고 여기에 니트(NEET)족, 즉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무직자 비율이 20% 가까이니 새삼스럽게 놀랄 결과는 아니다. 그뿐인가. 취업을 해도 청년노동자 중 33%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러니 제목을 보고서 나는 상위 10%가 임금동결을 해서라도 11만명의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못된’ 기대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제는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오랜 기간 살아가는 청년들의 문제를 그것이 이후 전체 생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생애적 핸디캡’이 된다고 지적하는 칼럼을 읽었고, 어제는 그로 인해 인적자본의 질이 떨어져 평생 입게 되는 임금손실분인 ‘낙인효과’가 얼마라고 분석한 뉴스를 읽었다. 그 ‘생애’니 ‘효과’니 하는 말조차 몰인정한 말이라고 읽었을 만큼 이 나라에서 청년실업 문제는 절박하니 해결 방법을 말하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나는 기대를 접을 수가 없는 것이다.

4. 온 나라가 임금피크제로 소동이다.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만들어질 거라고 노동자권리 삭감에 혈안이다. 내년부터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사용자 자본과 권력은 밀어붙이고 조합원·노동자를 대표해서 노조는 합의해 준다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바탕 소동이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를 만든다고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공익광고를 해 왔다. 이런 식이면 지금 이 나라에서 일자리 부족도 노동자가 임금이 높아서고 청년실업도 고임금 탓이다.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실업은 노동자의 임금 탓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완전고용은 노동자 임금만 통제하면 실현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걸 하겠다고 하는 권력과 자본은 용감하게 나서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나는 의아하다. 어디 그뿐인가. 임금 아닌 고용도 그렇다.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고용을 유연화할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말해 왔다. 쉬운 해고라며 일반해고를 도입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이미 지난 9월15일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로 의결돼서 가이드라인과 법·제도로 추진을 예약해 놓았다. 앞으로 일반해고를 두고서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고의 자유가 일자리를 만들어서 완전고용을 보장한다. 뭐 이런 논리가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다. ‘해고가 고용이다. 해고의 자유를 달라.’ 이렇게 사용자 자본은 주문하고 이에 따라 권력은 응답하고 있다고 보일 지경이다. 한 사업장 사용자가 할 수 있는 말과 나라 전체 수준에서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업장의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처분과 이 나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은 달라야 한다. 자본의 욕심 없이 ‘아낌없이 노동자에게 주는’ 한 사업장의 사용자는 그 사업장에서 경영상태·지급여력 등을 가지고 협상해서 노동자 임금을 결정해서 지급하니, 노동자에게 지급할 총액이 정해져 있다면 상위 10%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면 그만큼 나머지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지급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라의 모든 사업장에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경영상태가 어려워 지급여력 등이 되지 못한 저임금 사업장을 지원할 방법을 찾는 것일 것이다. ‘저임금이 고용을 만든다’는 논리로 방법을 찾아서는 안 된다.

5. 어째서 노동자가 근로의 대가로 받는 임금을 문제라고 말하는가. 임금이 문제라고 말하는 방법도 이상하다. 이 나라에서 분명히 임금이 문제이긴 하다. 노동자의 임금을 말하면서도 어찌해서 최저임금 수준에서 크게 높지 않은 임금을 지급받는 노동자가 많다고, 그러니 임금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그래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저임금이 문제라고, 그걸 개선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문제라고 말하는 청년실업은 이런 저임금의 열악한 사업장에 취업을 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대졸인 청년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좋은 일자리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아무도 저임금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라고 하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는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가 아닌 것을 말한다.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서 저임금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고 결국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 방안이다. 그 수가 정해져 있는 기존 고임금 일자리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건 장년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서 청년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쉬운 해고라는 일반해고 등이 지난 9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문에 담겼다.

6. 상위 10%는 장기근속 장년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업장이 이들의 임금을 동결 내지 삭감해서 절감된 인건비가 있어야 청년을 채용할 수 있는 조건이란 말인가. 이 나라에서 노동자로 신규채용된 직후에 가장 낮은 임금을 지급받고 그 뒤 근속에 따라 인상된 임금을 지급받는다. 생산단가에서 인건비가 문제라면 가장 낮은 임금을 지급할 노동자를 대거 신규채용해서 사용하면 된다. 투입 노동비용에 대비한 노동생산성은 단박에 상승한다. 이런데도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임금이 지금 이 나라에서 실업의 이유가 아님을 말해 준다. 임금 말고 다른 경제의 논리가 청년실업의 이유임을 말해 준다. 그런데도 임금이 이유라고 이 나라에서 지금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임금피크제 도입한다고 소동이다. 국가연구기관 발행의 연구보고서까지 엉터리여서 심란한 나라에서 청년에게 묻고 싶어진다.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삭감하고, 쉽게 해고를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청년이 취업하고자 하는 좋은 일자리일까.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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