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전구 광주공장 철거현장에서 떨어져 나온 수은 사진. 철거작업에 참여한 하청노동자 제공

남영전구 광주공장 수은 집단중독 사건은 수은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산업현장에 무방비로 방치된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또한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진 건설현장 착취구조의 민낯을 보여 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23일 남영전구가 위치한 광주광역시 하남공단과 인근 평동공단을 찾았다. 돈을 벌기 위해 남영전구 광주공장 철거현장에 투입됐다가 경제적으로 손실을 입고, 그도 모자라 수은중독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현실에서 고통받고 있는 두 명의 하청업체 사장을 만났다.

이들은 “남영전구는 공장에 수은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을 뿐인 우리에게 사용자 책임을 묻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반문했다.<편집자>

광주광역시 옥동에 위치한 평동공단 안에서 고물상(ㅎ자원)을 꾸려 살아가는 최아무개(51)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올해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최 사장, 돈 될 만한 일이 있는데 생각 있으면 한번 보겠어?”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예전에 고흥에서 만나 얼굴을 익힌 동종업계 이아무개 사장이었다. 이 사장의 제안은 이랬다. 광주 하남공단의 한 전구공장에서 생산설비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물류센터를 만드는데 거기서 나오는 고철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였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 사장은 대형 철거업체라는 에코산업의 정아무개 사장과 함께 최씨를 찾아왔다. 최씨는 그들과 함께 철거가 예정된 공장으로 갔다. 남영전구였다. 각종 기계며 배관설비가 최씨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눈짐작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돈이 될 것 같았다. 최씨를 공장으로 인도한 에코산업 정 사장은 “못해도 5천만원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이라며 “만에 하나 손해가 나면 내가 보전해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최씨는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에코산업 정 사장은 최씨에게 1억4천만원을 요구했다. 최씨는 공장을 둘러보고 온 바로 다음날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그리고 당일 에코산업과 ㅎ자원 사이에 ‘철거공사 및 고·비철 매매 계약’이 이뤄졌다.

그런데 수급자인 에코산업이 도급자인 ㅎ자원에 대금을 지급하고 일을 맡기는 구조가 아니다. 에코산업은 돈만 받아갔을 뿐이다. ㅎ자원이 공장에서 나오는 고철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구조다. 에코산업이 한 일이라고는 공사현장에 최씨를 소개해 준 것뿐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대목은 최씨가 1억4천만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에코산업에 지급했다는 점이다. 최씨는 공장을 둘러보기만 했지, 공장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의 고철이 나올지 계측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해에만 해도 킬로당 200~300원 하던 고철값이 올 들어 1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건설경기가 가라앉고 공단 내 제조업체들이 공장에 설비투자를 하지 않아 여간해서는 고철을 구경하기 어려워요. 그러던 차에 남영전구 공장에 가 보고 제 눈이 뒤집힌 거죠. 서둘러 계약을 하지 않으면 다른 업체가 채어 갈 것 같아서…. 이것저것 따져 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부터 했어요.”

"돈 벌 생각에 대출까지 받아 업무 따냈는데…"

최씨는 남영전구 수은중독 의심자 21명 안에 포함된다. 그 역시 발진과 두통·어지러움·불면증·체력저하·무기력증 같은 수은중독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남영전구 집단 수은중독 사건에 대한 <매일노동뉴스>의 최초 보도(10월12일)가 있기 전에는 자신이 왜 아픈지도 몰랐다. 열이 나면 감기약을 지어먹고, 온몸에 발진이 나면 피부과를 찾았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최씨를 괴롭힌 건 남영전구 철거공사로 인해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에코산업 정 사장이 호언장담했던 5천만원의 이윤을 남기기는커녕 8천만원 넘게 손해를 입었다. 공장 내 고철을 다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청인 우리토건은 철거작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포클레인을 동원해 공장바닥을 파헤치고, 남은 고철과 공장 바닥에 흥건했던 기름·수은찌꺼기 등을 파묻었다.

“수은을 매립하려고 그런 건지는 확실치 않아요. 확실한 건 하루라도 공기를 단축해야 이윤이 남으니까 나 같은 고철업자들이 손해를 보든 말든 원청은 공사기간까지 어겨 가며 바닥공사를 서두른 거예요. 철거인력들이 일하는 바로 옆에서 땅을 팠어요. ‘너무 위험하다, 이러다 포클레인에 맞아서 사람이라도 다치면 어떻게 하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원청에서는 ‘우리는 고철 따위에 관심이 없으니 빨리빨리 안 끝내면 고철이고 뭐고 다 묻어 버리겠다’고 협박했어요.”

이 일을 겪은 뒤 최씨는 12층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 그저 아이들이 눈에 밟혀 참고 또 참았다. 그러던 차에 남영전구 수은중독 보도를 접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을 만나 조사도 받았다.

“저는 그저 고철이 많다 길래 빚까지 내서 들어갔다가 피해만 입었어요. 돈도 날리고 몸도 망가졌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잘못이 있다는 거예요. 제가 철거업무에 투입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수은이 있다는 사실을 일러 주지 않았다고….”

최씨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저도 몰랐어요, 저도. 애초에 에코산업 정 사장이, 아니면 원청 관계자가 수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면 철거계약 자체를 맺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고철·비철 철거 자격만 있지, 수은 같은 중금속을 처리하는 자격은 없어요. 수은에 대해서는 무자격자입니다. 수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도 않고, 심지어 철거작업에 무자격자를 투입한 원청과 발주처에 책임을 물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업무는 '위에서 아래로' … 돈은 '아래에서 위로'

남영전구 생산공장 철거사업에 투입된 다단계 업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발주처인 남영전구 밑으로 ‘우리토건(원청)→ㅅ건설(하청)→에코산업(중간업자)→ㅎ자원(최종업자)→우성산업(일용직 노동자)’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ㅎ자원은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말단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ㅎ자원은 바로 위 수급인인 에코산업으로부터 대금을 받고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1억4천만원이라는 돈을 지불한 뒤 업무에 투입됐다. 돈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이상한 구조 때문이다. 건설현장 다단계 하도급과 맞물린 ‘선급금’ 관행이 이런 이상한 구조를 만들어 냈다.

실제로 ㅎ자원으로부터 1억4천만원을 받은 에코산업은 이 중 8천만원을 윗단계 수급인인 ㅅ건설에 지급했다(ㅎ자원→에코산업→ㅅ건설).

에코산업은 이 과정에서 최소 6천만원(1억4천만원-8천만원)을 챙겼다. ㅎ자원을 ㅅ건설에 연결해 주는 인력 브로커 역할만으로 막대한 중간이득을 취한 것이다.

돈은 계속 ‘아래에서 위로’ 흘렀다. 에코산업에서 8천만원을 받은 ㅅ건설도 원청인 우리토건으로부터 선급금 지불을 요구받았다.

“우리토건 쪽에서 철거업무가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계약을 맺게 됐는데, 우리토건에서 고철값 6천만원을 먼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철거업무입니다. 고철은 내 소관이 아니니까 빨리 고철업자를 찾아야 했죠. 고철값을 받아 그 돈을 우리토건에 지급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토건으로부터 같이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은 ㅅ건설 김아무개(44)씨는 우리토건이 요구한 6천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철업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만한 자금을 가진 업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방면으로 돌아다닌 끝에 한 업체와 선이 닿았다. 에코산업이었다.

“우리토건과 ㅅ건설이 체결한 도급계약서상으로는 우리토건이 저에게 6천800만원의 대금을 지급하기로 돼 있어요. 하지만 이는 명목상 계약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제가 6천만원을 지불하고 일을 시작한 거예요.”

김 사장은 에코산업으로부터 받은 8천만원 중 6천만원을 고철값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2천만원으로 공사비용과 인건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원청인 우리토건은 발주처인 남영전구로부터 2억1천800만원을, 다시 ㅅ건설로부터 6천만원을 이중으로 받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원청인 우리토건, 중간업자인 에코산업이 이득을 챙긴 만큼 나머지 업체들이 손해를 입었다.

“언론에서 자꾸 다단계 하도급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저는 공장 콘크리트 철거하러 들어간 거였지, 제가 하도급을 준 게 아니에요. 고철값은 내야겠고, 그때 마침 에코산업이 ㅎ자원 사장을 데려왔길래 고철 업무를 떼어 준 것뿐입니다. 돈이라도 벌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죠. 저도 1천만원 넘게 손해 보고 나왔어요.”

"남영전구 철거현장에 남영전구 관계자 있었다"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ㅎ자원 최씨와 ㅅ건설 김 씨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먹이사슬에 낚인 피해자였다. 자살시도를 결심할 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사업하다 보면 손해도 볼 수 있지’라고 자위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이런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전해졌다. 자신들이 투입됐던 공장에 수은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공사현장에 발주처인 남영전구 관계자가 함께 있었다는 증언이다. 공사현장에 대한 이들의 증언은 구체적이다.

“철거업무에 투입된 일용직 노동자들이 아파서 일을 못하겠다고 병원에 갔어요. 인부들이 한꺼번에 빠져서 아예 그날은 업무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인부들이 저에게 ‘의사가 수은중독이 의심된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현장에 같이 있던 남영전구 박아무개 과장에게 ‘대체 수은이 뭐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공장 바닥을 가리키면서 ‘저게 수은이잖아’ 하는 겁니다.”<사진 참조>

김씨에 따르면 당시 박 과장은 “공장을 가동할 때 우리 직원들도 수은 때문에 얼굴에 발진이 나서 피부과도 다니고 했는데, 한 며칠 지나면 다 괜찮아졌다”며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배관을 철거할 때 주르륵 흘러내리던 은색의 액체, 공장 바닥에 기름찌거기와 뒤섞여 흥건히 고여 있던 은색의 액체가 바로 수은이었던 것이다. “남영전구 광주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지 오래돼 남아 있는 수은이 없다”던 남영전구측의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남영전구 박 과장은 수은중독 의심자 21명 명단에서 제외돼 있다. 당장 역학조사가 필요한 상태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 과장은 최근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관리직이었던 그는 최근 부산 영업점으로 발령이 났고, 그 뒤 사직했다. 박 과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과거 남영전구에서 전구를 생산했던 노동자들도 수은중독에 따른 부작용을 호소했다는 말이 된다.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역학조사가 시급해 보인다.

철거작업 당시 작업현장 상태도 엉망이었다. 최씨와 김 씨의 말을 더 들어보자.

“수은이 담긴 플라스틱 페인트통이 뚜껑조차 없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어요. 처음엔 그게 뭔지도 몰랐죠. 장정 셋이 페인트통 하나를 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겁더라고요. 나중에 알았습니다. 수은이 중금속이라 그렇게 무거웠다는 것을….”

“생산설비를 철거하느라 인부들이 산소용접기로 배관을 잘라 냈어요. 그런데 작업현장 안에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곳곳에 방치돼 있는 겁니다. ‘이러다 폭발사고라도 나면 우리 다 죽는다’고 원청에 항의했더니, 우리보고 치우라고 하더라고요. 시너 말고도 영어나 일어로 쓰인 라벨이 붙은 각종 화학물질이 널려 있었습니다. 냄새가 코를 찔렀죠. 그럼에도 안전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대기 중에 포함된 수은이 공장 밖으로 유출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철거현장에 인부들이 투입된 뒤 뒤늦게 배기시설이 설치됐는데, 배기구가 이웃 공장을 향해 설치됐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웃 공장이 바로 대기업 계열 빵 공장이라는 사실이다.

그저 돈이나 벌자고 철거현장에 뛰어들었던 최씨와 김 사장, 그 밖에 현장 노동자들은 지금도 수은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현재까지 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노동자들이 추가로 산재신청을 준비 중이다.

“남영전구가 공장에 수은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일부러 그 말을 하지 않은 거죠. 중금속 처리비용이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우리토건이 수은 여부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돈 놓고 돈 먹기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거기에 부나비 같은 에코산업이 끼어든 겁니다.”

결국 남영전구 집단 수은중독 사건은 ‘돈이 부른 재앙’으로 요약된다. 사람의 목숨이나 인간의 노동력이 비용으로 환치되는 오늘의 현실이 그려 낸 처참한 지옥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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